실물 지표 부진 속 정책 모멘텀이 이끈 증시…'중동 확전' 하반기 변수로
입력 2025.06.19 07:00
    조기 대선 후 이어진 '이재명 랠리'
    상법 개정·배당 확대 등 정책 기대감
    실물은 부진…성장률 하향·실적 둔화
    지정학·관세 리스크, 정책 랠리 '복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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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증시의 상승세가 매섭다. 조기 대선 이후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대감이 투자 심리를 자극하면서, 코스피는 연중 최고 수준인 3000을 목전에 두고 있다. 상법 개정,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유도 등 자본시장 선진화 메시지가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외국인과 개인이 동반 순매수에 나서며 시장 유동성은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특히 시장의 시선은 '정책'에 쏠려 있다. 새 정부는 출범 직후 상법 개정안 재추진, PBR 0.8배 미만 상장사 세금 부과 법제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확대 등 자본효율화를 압박하는 규제 패키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여당 지도부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검토,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등 민감한 지배구조 이슈까지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자본시장 개혁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실제 시장 반응도 민감하게 나타났다. 대선 이후 코스피는 8거래일 중 7거래일간 상승했다. 특히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된 것이 컸다는 평가다. 주요 증권사들은 증권업종을 비롯해, 내수 기반 저PBR 종목, 고배당 유틸리티주 등 정책 수혜 테마를 중심으로 리레이팅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재 국내 증시는 정책 드라이브가 밸류에이션 상승을 유도하는 국면에 있다"고 평가한다. 단기 금리 인하 기대와 맞물리며 증시 내 주주환원 기대감이 확산됐고, 일각에선 MSCI 선진국 지수 편입도 가능하다는 기대감도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 랠리를 놓고선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실물경제 지표는 여전히 부진하고, 하반기 기업 실적 전망 역시 고무적이진 않기 때문이다. 2분기 실적 시즌이 끝나면 3분기부터 이익 추정치 하향 조정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재 증권가의 컨센서스인데,  하반기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시되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국내 주요 기업들의 순이익 증가율은 시장 컨센서스를 하회했고, 일부 수출주를 제외하면 내수 관련 업종은 역성장에 가까운 흐름을 보였다. 특히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경우, 대형 수출주의 마진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하반기 실적에 대한 기대치는 더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은행 역시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발 관세전쟁 여파에 따라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불확실성이 크고, 내수 부진이 이어지면서 성장률 전망치가 0%대까지 떨어진 것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역시 지난 2월 전망치 대비 0.2%포인트 낮춘 1.6%로 전망했다.

      정책의 실질 효과 역시 아직 미지수다. 상법 개정안이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은 시장 심리를 자극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제도 정착과 기업의 행동 변화까지 이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법률 개정에 필요한 국회 절차, 재계의 반발, 세부 시행령 논란 등 정치적 변수가 많다는 점도 부담이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시의 잠재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이란 핵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제 공습이 알려지며 국제 유가가 들썩이고 있다. 이달 초 60달러 초반 선에서 거래되던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15일 한 때 75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국제 유가가 상승할 경우 에너지 수급 불안은 물론 제조 비용 증가와 공공요금 인상 압력, 물가 상승 등 전방위적인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약 200일분의 비축유를 확보한 상태라 단기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한 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현재 국내 증시 상승세는 수익(EPS) 상승 기대감이 아니라, 정책 기대감에 따른 배수(PER) 상승장"이라며 "이스라엘ㆍ이란 분쟁이 중동 지역 전면전으로 확전되고, 타 지역 국지도발 등 연쇄 갈등으로 이어진다면 PER 상승장은 EPS 상승장보다 훨씬 가파르게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도 국내 시장에 부담이다. 당장 미중 갈등 재점화 가능성과 맞물려 원자재·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주력 산업에 대한 규제 리스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가 예고한 '관세 카드'는 무역 흐름뿐 아니라 글로벌 자산 배분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하반기 국내 증시에 예상치 못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처럼 실물경제는 부진하고, 외생 변수는 늘어가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만 홀로 고공 행진하는 모습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하반기 코스피 흐름은 밸류에이션보다 이익이 결정할 것"이라며 "수출 증가율 둔화로 3분기와 4분기 실적은 하향 조정이 필요하며 환율 하락은 기업의 매출과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금의 증시 상승세는 단기적인 이벤트라고 판단하며, 수출 등 실물 경제 지표가 여전히 좋지 않고 삼성전자 등 주도주의 실적 개선세 모멘텀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라며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고, 트럼프의 관세 정책도 다음달 재차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수출 자체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하반기 단기적인 조정을 받더라도, 여전히 국내 증시가 저평가 국면에 놓여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상승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적과 무관하게 수급과 밸류에이션 측면만 놓고 보더라도 국내 증시는 상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주요 증권사 리서치는 최근 법인영업 조직으로부터 '목표 지수를 더 높인 레포트는 없느냐', '주주환원율이 향후 지속적으로 상승할 기업 리스트를 달라'는 등의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덩치가 큰 기관 자금들이 국내 증시에 더 투입될 여력이 남아있다는 방증이란 해석이 나온다. 미국 등 선진 증시가 연초 이후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국내 증시로 돌아올 기관 수급 만으로도 한동안 강세장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증시는 여전히 저평가 상태로, 아직 2022년 고점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그동안 해외 주식과 비트코인 등으로 자금이 빠져나가 수급이 좋지 않았는데, 최근 정책 기대감으로 유동성이 돌아왔기 때문에 수급 이슈만으로도 하반기 국내 증시를 밀어올릴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