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과도한 LBO 막아 안정성 지키겠단 건데
정작 바이아웃 운용사는 LTV 60%↑ 차입 없어
부동산·인프라가 영향권…규제 비율 이상 차입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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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홈플러스 사태' 이후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사모펀드(PEF) 규제에 나선 가운데, '엉뚱한 희생양'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차입 매수(LBO·Leveraged Buyout)' 관련, 차입 한도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투자업계에서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하는 바이아웃 펀드보다는 부동산·인프라 투자 시장이 '철퇴'를 맞을 거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여당 주도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일반 사모펀드의 차입 한도를 현행 순자산의 400%에서 200%로 절반 가까이 줄이는 것이 골자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LBO 방식으로 인수한 것과 관련, 사모펀드의 과도한 부채 활용을 막겠다는 취지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현정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유럽연합(EU)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마련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모펀드의 무리한 차입 관행을 개선하고 우리 기업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지키겠다"라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국내 바이아웃 펀드나 M&A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금도 PEF가 투자를 할 때, 순자산의 200% 이상 인수금융을 일으켜 투자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설명이다.
LTV(담보인정비율)는 차입금을 순자산과 차입금의 합인 총자산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부채비율 200%를 LTV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66.7% 정도 규모다. 현재 은행 등 금융기관의 인수금융 승인 LTV 규모가 50% 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도 이미 한도 내에서 차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바이아웃 운용사가 LTV 기준 67% 이상으로 차입을 해 투자를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라며 "오히려 부동산이나 인프라에 투자하는 기관 전용 사모펀드들의 경우, 실물 자산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많이 쓰는 경우가 있어 이들이 직접적인 영향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이 발의한 법안엔 기업 인수 목적 펀드의 무리한 차입을 주요 입법 취지로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실제 세부 법 조문에 'LBO에만 적용한다'는 제한 규정이 별도로 없다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해당 규제가 시행될 경우, 부동산과 인프라 기관 전용 사모펀드 등도 모두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물론 외부 기관으로부터 부채 상환능력을 평가받아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현행과 같이 순자산의 400% 이내까지 차입이 허용된다.다만 이 경우 차입 과정에서 '금융위 승인'이라는 허들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또한 내부거래 또는 SPC를 통한 자산거래 발생 시 금융위에 이해상충 보고 의무도 신설되는데, 이 역시 부동산 SPC 구조나 내부 계열사 거래가 많은 부동산·인프라 펀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 부동산이나 인프라 실물 자산 투자의 경우, 기업 투자보다 리스크가 덜하고 담보가 상대적으로 확실한 편이라 레버리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순자산 대비 200% 이상 대출을 일으키는 것이 빈번하지는 않지만, 아예 없는 경우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들은 벌써부터 해당 법안의 통과 여부와 대응책 마련에 나선 모양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레버리지 한도 축소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 중이며, 투자의 가장 기본인 대출 부분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 개정에 따라 기존 포트폴리오나 투자 전략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 시점에 따라 자금조달 방식의 다각화 등 필요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준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법률의 구체적인 개정 방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레버리지 한도 조정으로 자금조달 방식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투자의 핵심인 대출 관련 규제가 변하는 만큼 기존 포트폴리오 점검과 함께 향후 투자 전략 조정이 필요한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일률적인 차입 한도 규제보다, PF대출과 같이 인수금융에서도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금융사의 위험가중치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금융당국은 PF사업의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금융사가 PF 대출에 대해 적립해야하는 자본금과 충당금 비율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인수금융에도 동일한 방안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율에 대한 일률적인 규제는 향후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어,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효과적이다"라며 "PF 대출처럼 PEF의 인수금융에서도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위험가중치를 차등 적용하면 대출기관인 금융사가 알아서 해당 투자 건의 리스크를 한 번 더 스크리닝할 유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