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전 '블랙홀' 벗어난 산업은행...리더십ㆍ정체성 해결은 '난망'
입력 2025.06.23 07:00
    새 정부 출범 후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추진
    부산 이전 우려 해소…인력 이탈 등 개선될 듯
    '자본금 3조' 투자공사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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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새 정부 출범하며 한국산업은행도 한동안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던 '부산 이전' 논란을 털어낼 수 있게 됐다. 다만 내부 수습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새 회장 인선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사실상 '동남권 산업은행'인 동남권투자공사 출범 이후 산은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교통정리도 필요할 거란 지적이다.

      '부산 이전'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수 년 간 주니어들이 대거 이탈하며 실무 역량에 물음표가 찍힌 점도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GM 국내 사업 축소 움직임 등 현안에 대응할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동남권산업투자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부산·울산·경남 거점 기업에 맞춤형 금융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던 '동남투자은행'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1일 페이스북에 "해양수도 부산에 동남투자은행(가칭) 설립을 추진하겠다"며 "동남투자은행은 국가 균형 발전 전략의 핵심인 메가시티 조성에 꼭 필요한 지역 기반 정책 금융기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공식적으로 중단한 셈이다.

      지난 3년간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 논란으로 인해 노사 갈등이 극대화하는 등 운신의 폭에 제한을 받았다. 부산 이전 문제에 가로막혀 개선이 요원했던 '법정자본금' 한도도 증액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자본금 한도는 30조원으로 이를 늘리려면 산은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산업은행 수권자본금 증액을 통한 차세대 전략산업 육성 여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책은행'으로서의 입지도 일정부분 보장받은 모양새다. 새 정부는 인공지능(AI) 등의 산업에 100조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이중 50조원 규모의 기금을 산업은행 내에 설치한다. 정권 교체 때마다 본사 이전이 언급되며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수습하고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는 게 산은 안팎의 평가다.

      문제는 산은의 방향성과 정체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리더십이 부재가 첫 손에 꼽힌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6일 임기가 만료돼 퇴임했다. 현행 김복규 전무이사 대행 체제에선 활동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금융권에선 행장의 공석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부가 기획재정부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조직 개편, 금융위원장 인선 등 앞서 해결돼야 할 선행 절차가 수두룩하다. 새 정부가 주요 공직에 '국민 추천 인사' 정책을 도입하며 인선 작업이 예상보다 더욱 길어질 거란 전망이 적지 않다. 

      현 시점에서 산은 회장 후보로 '하마평'이 오르는 이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새 정부 주변 인사 중 '금융통', '경제통'으로 불리는 인사들은 적지 않지만, 이들의 보직이 먼저 정리돼야 산은 회장 후보도 추릴 수 있을 거란 평판이 우세하다. 산은 회장의 정체성을 새 정부가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지도 변수다. 그간 산은 회장은 금융인, 정치인, 학자 등 다양한 환경의 인사들이 맡아왔다. 전임인 강 전 회장은 정치인 출신으로, 임기 내내 비전문성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체질 개선에 활력을 불어넣을 주니어 직원이 부족한 점도 걱정거리다. 산은과 노조 측에 따르면 2022년 1월 윤 전 대통령이 부산 이전 공약을 발표한 뒤 작년까지 3년간 235명이 퇴사했다. 과거 한 해 퇴사자가 30~40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입사 경쟁률 역시 2020년 67대 1에서 2024년 30대 1로 반 토막 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젊은 세대에서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가장 활발한 1~5년차 인력을 잃은 건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남권투자공사 출범 후 정체성을 두고 양 사간 갈등이 적지 않을거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 투자공사와 산업은행과 업무가 중복되는 까닭이다. 동남권투자공사는 지역 특성상 해운 및 조선업을 지원할 가능성이 큰데, 중후장대 산업을 기반으로 금융을 지원하고 있는 산은과 영역이 겹친다. 산은은 이미 부산에서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동남권투자공사가 완주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분위기"라며 "내부를 안심시키고 정책을 함께 이끌어 갈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 산은의 방황은 지속될 전망"이라고 조심스레 언급했다.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한국GM 이슈가 부각된 점 역시 고민거리일 거란 평가다. 한국GM은 지난달 말 직영서비스센터 순차매각, 부평공장 토지 일부 매각 등 자구안을 발표했다. 한국GM 노동조합은 '한국 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산은은 한국GM의 2대 주주로, 이전에 철수설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대규모 지원을 단행했던 바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2018년 당시에도 산은의 역할론을 요구하는 여론이 컸고, 결국 미국GM 대여금 출자전환, 산은 신규자금 8000억원 증자 등 8조원 가까운 지원 패키지가 만들어졌다"며 당시 맺은 경영권 안정 협약(미국GM 최대주주 지위 유지 등) 만료가 2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인데, 회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실무진만으로 대응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