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저성장 국가로 여겨지던 일본
낮은 환율에 수출 기업 살아나고
밸류업 정책에 증시에 불붙자
외국인 러시에 기업 투자, M&A 역대 최대
상반기만 조단위 M&A 속속 등장
KKR· 베인·칼라일 일본行…MBK 무게추 이동 움직임도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잃어버린 30년, 저(低)환율과 저물가,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며 대표적인 저성장 국가로 치부되던 일본이 2025년엔 가장 투자하기 좋은 국가로 변모했다.
오랜기간 약세를 보인 엔화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거 끌어들이며 내수 활성화의 기반이 됐고 수출 기업들엔 더할 나위 없는 사업 환경을 조성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으로 중국으로 향하지 못한 '아시아 지역 투자 자금'이 경제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으로 쏠리는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가가 상승하며 경제가 활기를 되찾자 일본 증시엔 불이 붙었다. 니케이지수는 이미 지난해 4만포인트를 넘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유입이 늘어나자 기업들의 인수합병(M&A) 시장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PEF와 VC 투자는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한 179억달러(약 25조원)를 기록했다. M&A 거래 건수만 한 해 1000여건이 넘는다.
엔화의 약세, 저금리로 인한 비교적 저렴한 차입 비용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비교적 낮은 리스크로 일본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엔 경영 승계가 필요한 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M&A 매물도 넘쳐난다. 여기에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M&A를 지원하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시장을 뒷받침했다.활황인 증시는 투자자들에게 기업공개(IPO)를 비롯한 다양한 투자금회수(엑시트)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면서 자본시장 내 선순환 구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일본 시장에서 기회를 옅보면서 실력있는 인재들의 몸 값이 치솟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고용시장 전반적 확대해도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데, 일본의 실업률은 약 2.5%로 미국의 절반, G7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기회를 놓칠리 없는 글로벌 사모펀드(PEF)들 역시 발빠르게 일본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조 단위 M&A 거래가 수차례 발생했다.
글로벌 PEF 운용사 KKR과 베인캐피탈은 일본 IT기업 후지소프트 지분(33.6%) 인수전에서 맞붙었다. 수개월 간 이어진 경쟁속에 KKR이 승기를 잡으며 올해 초 39억달러(약 5조7000억원)을 들여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KKR은 일본투자공사(JIC캐피탈)와 손잡고 건설·의료·농기계 제조업체 탑콘(Topcon Corporation) 인수를 추진중이다. 인수가격은 3486억엔(약 3조2000억원)이다.
고배를 마시긴 했으나 베인캐피탈 역시 일본 시장에 진심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초 미쓰비치케미컬그룹(Mitsubishi Chemical Group Corporation)의 제약사업부인 미쓰비시다나베제약(Mitsubishi Tanabe Pharma Corporation)을 5100억엔(약 4조8000억원)에 인수해 거래 종결을 앞두고 있다. 1월엔 항공기 인테리어 기업인 JAMCO를 공개매수 방식으로 6억3400만달러(약 8700억원)를 투자해 인수했다.
미국 칼라일그룹(The Carlyle Group)은 이미 4300억엔(약 3조7500억원) 규모의 일본 전용 투자 펀드를 신설했다. 일본만을 특정해 투자하는 펀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일본 자본시장의 활황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하고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금 부각하면서 전세계적으로 경기의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렵단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갓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기 시작한 일본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당분간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투자자들이 많지 않다. 토종 PEF들은 여전히 국내 대기업 거래에 주력하고 있고, 기관투자가들 역시 아직까진 미국과 유럽 등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나마 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투자하는 MBK파트너스 정도가 일본 투자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MBK는 2023년 노인 요양 서비스 히토와홀딩스 (HITOWA Holdings)를 900억엔(약 8200억원)에, 지난해엔 아리나민제약(Alinamin Pharmaceutical)을 약 3조원에 인수한 바 있다. 반도체회로 제조사 FICT, JBRS 역시 MBK의 대표적인 일본 투자 사례다.
MBK는 2017년 일본 골프장 체인 기업 아코디아골프를 인수해 볼트온(Bolt-on) 과정까지 총 8000억원을 투자해 2021년 4조원(4000억엔)에 투자금을 회수한 기록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일본 주얼리 브랜드 타사키의 지분 100%를 홍콩계 PEF 파운틴베스트와 일본계 PEF 유니슨캐피탈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도 했다. 매각 규모는 약 1000억엔(9311억원)으로 전해졌다. MBK는 지난 2008년 타사키에 처음 투자하면서 당시 지분 80%를 950억원에 사들였고 이후 2016년에 지분을 100%로 늘렸다.
MBK는 이제까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주타깃으로 투자 활동을 펼쳐왔지만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게 현실이다. 중국 투자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시장에선 최근 경영권 인수와 성공적인 자금 회수보단, 한국앤컴퍼니와 고려아연 등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며 이목을 끌었다. 최근엔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돌입 사태가 발생하며 한국 내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의 리스크, 한국에서의 좁아진 입지, 불붙은 일본 등 현재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MBK의 무게추가 어디로 향할지 얼추 답이 보이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