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업계 '비트코인 현물 ETF' 준비 가시화
IBIT 등 벤치마크 삼아 상품 설계…대형사 중심 준비 중
"신뢰성ㆍ트랙레코드 중요…중소형사 불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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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AI와 디지털 자산 육성을 강조하는 기조 속에서, 국내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위한 제도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가상자산이라는 새로운 자산군이 제도권 ETF에 편입될 가능성이 열리면서, 자산운용업계는 시장 선점을 위한 물 밑 작업에 한창이다.
이 시장은 대형 운용사 위주의 각축전이 될 전망이다. 미국 역시 블랙록이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과점에 성공했듯, 복잡한 상품 구조와 높은 신뢰도 필요성 때문에 이른바 '빅3' 외에는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지난해부터 치열하게 이어진 '1위 운용사 경쟁' 역시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의 향방에 따라 가려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 하반기 비트코인 ETF 도입과 관련한 정책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디지털자산의 산업적 성격을 포괄하는 '디지털자산혁신법' 발의를 예고했다. 해당 법안은 디지털자산위원회를 금융위 산하에 설치하고,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을 10억원으로 설정하는 등 2단계 기본법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다. 디지털자산을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하기 위한 입법이 진행되면서 전체적인 제도화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법 개정 이후에도 상품 상용화를 위해선 기술적 인프라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커스터디(수탁) 체계의 설정과 운용, LP(유동성 공급자)의 헤지 수단 마련 등이 과제로 꼽힌다. 수조원 규모의 실물 비트코인을 안전하게 보관할 국내 수탁 인프라는 아직 미흡하고, 보안 인증 및 보험 등 글로벌 수준의 안전성 확보도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LP들이 가격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파생상품 거래는 국내 제도상 허용되지 않아 해외 거래소 의존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다만 업계는 기술적 과제가 본질적 장벽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대형 운용사 실무자는 "LP 리스크 관리나 커스터디 인프라 문제는 제도 정비 이후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이라며 "미국에서 승인된 비트코인 현물 ETF 구조를 벤치마크 삼아 국내 실정에 맞게 설계하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최대 비트코인 현물 ETF인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를 벤치마크 사례로 삼으면 된다는 것이다. IBIT는 미국 SEC의 승인을 받아 지난해 1월 출시된 이후 약 10조원의 자산을 모으며 급성장한 대표 상품으로, 실물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구조를 갖췄다. 국내 업계는 이와 관련한 내부 스터디를 지속하며 상품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복수의 운용사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자본시장 혁신을 이끌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며, 제도 변화에 맞춰 즉시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다. 사실상 물 밑 작업은 끝났고, 제도가 시행되며 곧바로 출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다수의 운용사들이 향후 비트코인 현물 ETF 개발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결국 승자는 한두 곳의 대형 운용사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상품 간 구조나 수수료 차별화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트랙레코드와 마케팅 역량이 운용사 간 경쟁력을 가를 핵심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한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현실에 없던 상품이 투자시장에 등장하는 만큼, 신뢰 가능한 운용사의 브랜드 파워와 과거 실적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며 "상품 구조나 수수료보다 '누가 만들었는가'가 투자자 심리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트코인처럼 유동성 변동성이 큰 자산은 기관 수급 기반이 약한 특성상, 리스크 관리 주체로서 운용사의 신뢰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국에서도 SEC가 승인한 주요 가상자산 ETF 대부분이 블랙록, 피델리티 등 대형사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국내 역시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치열하게 펼쳐진 '운용사 1위 경쟁'의 결과 역시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 주도권을 누가 잡을지가 결정하게 될 거란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전체 시가총액은 107조원에 달하며, 이 중 비트코인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에 관심이 많은만큼 ETF가 출시되면 못해도 수 조 원의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다, 미래 전략 자산 투자시장을 주도한다는 '이미지'의 가치도 적지 않을 거란 평가다. 대형사 간 '자존심 대결'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소형 운용사들의 초기 진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복수의 중소형 하우스들은 내부 검토는 진행 중이나, 당장 상품을 내놓을지 여부는 제도화 이후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이다. 제도 정비 후 즉각적인 상품 조성에 나설 태세인 대형 운용사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 중소형 운용사 실무자는 "시장 신뢰가 관건인 상품인 만큼, 초기 시장은 대형사 중심으로 열릴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대형사의 실질적인 행보를 지켜본 뒤, 지수 구성이나 커스터디 연계 조건 등을 고려해 틈새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