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벤처·스타트업 투자 대폭 확대
전자등록 기업은 1% 안돼…투명성 필요
등록업 독점한 예탁원 보수적 입장만 반복
'허가제' 바뀌고도 등록기관 '0'...경쟁 유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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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974년 출범 이후 50년간 유가증권 예탁업무를 사실상 독점해 온 한국예탁결제원의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을까. 새 정부 들어 정책적으로 벤처·스타트업에 유일될 자금 규모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투자의 걸림돌 중 하나였던 '불투명성'을 '전자등록'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대부분 비상장사인 벤처·스타트업은 전자등록과 거리가 멀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벤처·스타트업 인증을 받은 4만여 곳의 기업 중 전자증권을 발행한 곳은 400곳 미만으로 전체 1%도 안 된다. 주식 발행이나 주주명부 관리가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전자증권은 실물증권을 대체해 전자적 방식으로 등록·관리하는 증권을 뜻한다. 발행부터 유통, 권리행사까지 모든 과정이 전산으로 처리된다. 전자증권법에 따라 상장사는 반드시 전자증권을 등록해야 하고, 관련 업무는 한국예탁결제원이 담당하고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나 중소벤처기업부 모두 투자 중심의 정책에 집중한 결과 투자시장은 비대해진 반면 회수시장은 매우 왜소한 불균형 구조가 됐다"며 "현재로선 100조원을 운영하겠다고 해도 이 돈이 어떻게 흘러가고 취지에 맞게 쓰이고 있는 지를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스타트업이 전자증권 등록에 미진했던 건 복잡한 절차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관 변경 ▲전자증권 전환 공고(1개월 이상) ▲개별 권리자 대상 통지 등 단계마다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게 부담이다. 벤처업계에 따르면 비상장기업이 전자증권 발행 시 매년 약 670만원의 비용이 필요한데, 규모가 작은 벤처로선 이조차도 장벽이다.
벤처업계에선 상장사 위주로 업무를 수행하는 예탁원이 너무 보수적인 관점으로 벤처기업 업무를 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들의 압박에 자격을 갖추고 전자등록을 신청한 한 업체는 서류 미비 등으로 반복 거절당하며 진이 쏙 빠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전자증권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깐깐한 예탁원의 방침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벤처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해도가 부족하다는 하소연이다.
이순호 예탁원 사장의 공개된 발언을 보면 비상장기업에 대한 비전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가 주류다. 최근 공개석상에서도 비슷한 입장이 관측됐다. 전자등록과 관련, 예탁원의 반응은 하소연이 주를 이뤘다. 벤처금융 시장 확대에 따른 기대감이나 목표는 찾기 어려웠다.
예탁원 관계자는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규제혁신연구회 세미나에서 "비상장 기업은 대표와 테크니션 몇 명이 전부다 보니 주주 명부, 투자 내역 관리에 있어 문외한"이라며 "교육을 해도 오지 않고, 주주 명부를 위탁하더라도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와서 무조건 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다만 업계에선 이 사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선거 캠프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른 교체를 전망하기도 한다.
벤처업계의 말을 단순한 투정으로 듣고 무시하기엔 벤처 투자에 대한 정부의 드라이브가 거세다. 정부는 2030년까지 100조원 규모의 자금을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 중심으로 50조원 상당의 첨단산업전략기금을 신설하고, 연기금과 민간금융,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유치하는 '국민펀드'의 형식을 제시했다.
정부가 과거 국민펀드 조성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00조원에 달하는 목표를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중 상당 금액이 벤처·스타트업에 흘러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을 벤처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퇴직연금은 임금 성격을 띠는 만큼 투자처를 제한해 왔고, 현재 퇴직연금보장법상 국내 비상장 주식에는 투자할 수 없다. 퇴직연금 투자가 가능해지면 벤처 투자 규모가 크게 불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벤처금융 관리사인 '쿼타랩'이 전자등록기관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9년 전자증권법이 도입되며 전자등록업이 허가제로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전자등록기관을 신청한 업체는 한 곳도 없다.
사업 범위 별로 최대 2000억원까지 자기자본을 갖춰야만 하는 규제가 배경으로 풀이된다. 예탁원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으로, 이를 타파하기 위해선 경쟁구도를 형성해 벤처·스타트업 전문 등록기관을 육성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회자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펀드는 거대한 투자 규모뿐 아니라 국민들의 직간접 투자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투명성이 선행될 수밖에 없다"며 "벤처·스타트업의 전자등록 확대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