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해 현금 확보…주주 가치 훼손 우려"
추가 소송 우려…상법 개정 이후 리스크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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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이 자기주식(자사주) 전량을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으로 3200억원을 조달하려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의 이번 자금 조달 계획이 주주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태광산업은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활용과 EB 발행을 다시 논의한다는 계획이지만, 예정대로 발행해도 상법 개정 이후 법적 분쟁의 표적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태광산업의 자사주 처분 결정과 EB 발행 결정에 대해 정정 명령을 부과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자사주 전량을 처분해 EB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금감원은 태광산업이 자사주 처분 대상과 EB 발행 대상을 빠뜨렸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태광산업은 이날 오후 5시 이사회를 열고 금감원의 정정 명령과 관련한 내용을 논의할 계획이다.
태광산업의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이를 상법 위반이자 배임 행위라고 꼬집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기업이 주주 외에 EB를 발행하려면 이사회가 거래 대상과 발행 조건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태광산업은 표면·만기이자율 0%, 만기 3년 조건으로 자사주 전량을 활용해 EB를 발행한다면서도 인수자를 공개하진 않았다.
트러스트자산운용 관계자는 "자사주가 대상인 EB 발행은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같은 효과가 있다"라며 "(태광산업의 EB 발행은)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자사주가 향후 유통가능주식으로 전환되면 오버행 우려만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라며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대량의 자사주를 주당순자산가치의 4분의 1 수준의 가격에 처분하는 것도 배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태광산업은 신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EB를 발행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임시 주주총회(주총)를 열고 화장품 사업과 부동산 개발·시행 사업,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할 계획이다. 태광산업은 몸값 6000억원이 거론되는 애경산업 인수전에도 참전한 상황이다. 기존 사업의 운영 비용과 인수합병(M&A), 신규 사업 투자 규모 등을 고려하면 태광산업은 당장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태광산업은 현재 2조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3월 말을 기준으로 1조4000억원 정도를 현금화할 수 있고, 최근 SK브로드밴드의 지분을 매각해 9000억원의 자금을 더 확보했다.
태광산업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간 매출도 2조원에 달하지만, 영업이익은 3년 연속 적자인 탓이다.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업황이 악화한 데다, 오랜 기간 신규 투자마저 자취를 감춘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태광산업의 신규 사업 추진 계획에는 의심스러운 시선이 뒤따른다. 태광산업이 EB 발행을 갑작스럽게 결정한 데다, 투자 계획도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상법 개정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사실상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기 위해 EB 발행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트러스톤자산운용 관계자는 "(태광산업이) 상법 개정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라며 "올해 초만 해도 논의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구소 또한 이날 논평을 통해 태광산업의 EB 발행 결정이 향후 개정될 상법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제개혁연구소 관계자는 "태광산업은 EB를 발행해 차입하지 않더라도 신규 사업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라며 "태광산업에 외부 차입이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EB를 발행해 (태광산업이) 우호주주를 확보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라며 "태광산업이 EB 발행 대상을 밝히지 않는 시점에서 EB 인수자는 지배주주에게 우호적인 투자자일 공산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태광산업은 자사주를 모두 활용해 EB를 발행할 만큼 재무 상황이 급변하지 않았다"라면서도 "새 정부의 자사주 제도 개선 정도가 달려졌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태광산업이 EB 발행을 예정대로 추진하면 법적 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은 이달 4일까지 상법 개정과 관련한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입장이다. 태광산업의 경우 당장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 이사들을 상대로 법원에 위법 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EB 발행 절차를 계속 진행하면 별도의 소송과 형사 고발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