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논란으로 이어진 EB 발행…자사주 처분 고민에 로펌 찾는 기업들
입력 2025.07.02 07:00
    정치권發 소각 압박에 기업들 로펌 자문 줄이어
    'EB냐 소각이냐'…입법 전 선제 대응 고심 깊어져
    "기존 자사주도 포함되나" 개정 범위에도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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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장사들의 대규모 교환사채(EB) 발행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한창인 상황에서 교환사채 발행이 정책 취지에 반하는 '우회 수단'으로 비쳐지면서다. 자사주 처분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며 로펌을 찾는 기업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EB 발행의 부정적 여론을 키운 것은 태광산업이다. 회사는 보유 자사주 24%를 기반으로 3200억원 규모 EB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그러자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EB 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사회 결의가 상법상 절차를 위반했다고 봤다. 또 PBR 0.22배로 자사주를 처분하는 것은 경영진의 배임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태광산업은 선을 긋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회사가 우호주주 확보를 위해 EB를 발행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비슷한 움직임은 다른 대기업집단에서도 감지된다. LS는 지난달 초 보유 자사주 약 1.2%(650억원 상당)를 활용해 대한항공을 상대로 EB를 발행하며 우호세력에 지분을 넘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B 발행은 아니지만 롯데지주도 최근 자사주 약 5%를 계열사인 롯데물산에 넘겼다.

      자사주를 기초로 한 EB 발행은 법적으로 허용된 자금조달 수단이다. 문제는 시점과 맥락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본격 논의하기 시작하자, 일부 기업들이 입법 전에 자사주를 미리 '처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정책 취지를 회피하는 '선제 대응'으로 비쳐졌다. 시장에선 자사주를 그냥 소각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려는 기업들의 행보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관심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EB 발행이 정책 회피 수단으로 쓰인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오히려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논의에 불이 붙는 모습이다. 야당이 상법개정과 관련해 기존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향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 EB 활용 제한 등이 입법에 반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태광산업의 EB 발행 사례는 그 자체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고, 실제 개정안의 참고 사례로 반영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에 EB 발행을 검토하던 다수 기업들이 대응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자사주 활용 방식과 시기, 소각 의무화 입법 가능성 등을 두고 복수의 로펌에 자문을 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EB 발행을 검토 중인 회사들이 적지 않은데 태광산업 사례를 통해 EB 발행이 자본시장 내에서 이슈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시장 참여자나 투자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행 시점을 조정하는 등 기업들이 더 신중하게 접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자본시장 친화적인 대안도 함께 검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로 있는 기업들은 EB 발행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들 펀드는 통상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회사의 자본 운용에 적극 개입하는 성향이 강하다. 실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 사안에 대해 여론전을 펼치는 것이 '전략적 대응'이란 분석도 있다. 가처분 인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조용히 넘어가는 것보다 공개적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향후의 투자 유치 등에 유리해서다.

      아직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관한 입법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EB 발행 등 구체적인 방안 모색에 나서는 기업들도 있지만, 정책 방향성을 두고 고심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기업들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 쟁점에 집중돼 있다. 하나는 자사주 소각이 법으로 강제될지 혹은 자율 소각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방식으로 추진될지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향후 입법이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까지 소급 적용되는지 여부다"며 "기업들은 입법 추이를 살피며 자사주 활용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로펌의 변호사는 "지배주주들이 회사 지배구조를 개편할 때 자사주를 많이 활용해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 소각하게 된다면 다른 주주들의 지분율이 올라가는 등 기업들 입장에선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이에 자사주를 둘러싼 기업들의 자문 수요가 빗발치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