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줄어든 은행권 부담…비은행 참여가 변수
"상생 명목 출자 반복될라"…금융권 내 우려 확산
채무조정 발표에 상환율 급감…도덕적 해이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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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취약계층 빚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이 절반 가량의 부담을 떠안을 것으로 보이면서 구체적인 규모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엔 예상보다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앞으로 이 같은 방식의 '상생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취약차주의 재기 지원을 위한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 추진에 약 8000억 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4000억 원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정부가 직접 조달하고, 나머지 4000억 원은 금융권과의 협의를 거쳐 각 금융사 자율분담 방식으로 확보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약 113만4000명의 취약차주가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고, 이들의 7년 이상 연체된 무담보채권 16조4000억 원 규모를 평균 5% 수준의 매입가로 일괄 매입하는 방안을 전제로 삼았다. 이에 따라 배드뱅크 설립 및 운영에 약 8000억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처럼 구체적인 재원이 공개되자 은행권에서도 구체적인 출자 규모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관건은 은행만 대상이 될지, 나머지 금융사까지 채권 매각에 동참할지 여부다. 만약 2금융권도 채권 매각에 동참한다면 배드뱅크 출자 규모 또한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다만 은행만 출자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출자 부담이 예상보다 크지는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만약 주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10여곳이 4000억원을 나누어 출자한다고 가정하면 약 400억원 규모를 부담하게 된다. 만약 여기에 비은행 금융사까지 동참하게 되면 출자 부담이 200~300억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난 2008년 등 배드뱅크 설립 당시 금융권이 부담해야 하는 규모가 5000억원을 훌쩍 넘었다"라며 "현 시점에서는 규모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은행권 부담이 예상보다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앞으로 이와 같은 '상생' 청구서를 지속적으로 받아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은행들도 이번 추경 예산안이 발표되기 전까지 배드뱅크 총 8000억원 가운데 4000억원 상당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과 관련한 어떠한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금융사들이 출자 비율 등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점도 과제 중 하나다. 과거 배드뱅크 설립 당시에도 시중은행별 대출 규모나 부실 등에 따라 출자 비율이 정해져야 한다는 의견가 흘러나오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었던 바 있다.
배드뱅크 설립을 통한 채무 탕감이 이뤄지면서 차주들의 상환의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중 하나다. 실제 업계 일각에서는 배드뱅크 설립 관련 소식이 전해진 뒤에 상환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NPL사 한 관계자는 "채무조정 정책이 발표되면 무담보 채권 회수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라며 "보통은 건수가 많다 보니 회수율이 항상 일정 수준으로 수렴하는데, 이번에도 관련 정책이 발표되면서 회수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