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기간 없이 즉시 시행
이사의 충실의무 주주로 확대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의 의결권 3% 제한 등
인적분할 논란 커지는 파마리서치
저가 신주발행으로 공세받는 롯데렌탈
상법 개정안 통과에 재계는 긴장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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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개정안이 수 많은 논란을 딛고 가까스로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 판단한 국민의힘이 막판 협의에 돌입하면서 상법 개정안은 새정부 들어 여야 협치 법안 1호로 기록됐다. 재계가 꾸준히 우려를 나타내던 쟁점 중 하나인 집중투표제 도입은 다소 미뤄졌으나, 상법 개정안의 핵심이자 기업 경영진들에게 가장 밀접한 현안인 '이사 충실의무 확대' 내용은 유예기간 없이 즉시 시행될 전망이다.
기업 경영에 문제를 제기하던 주주들에겐 이제 이사진을 고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주주권익이 침해 당했다고 판단하는 주주들의 활발한 활동이 예상되는데, 재계는 지금 상법 개정안의 적용 기업 제1호가 어디가 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일단 파마리서치, 롯데렌탈 등 최근까지 이사진과 주주의 갈등이 이어진 기업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스킨 부스터 제품 '리쥬란'으로 잘 알려진 파마리서치는 지난달 지주회사인 파마리서치홀딩스와 사업회사인 파마리서치로 쪼개는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경영효율화를 달성하겠단 목표를 내세웠지만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정상수 의장은 추후 재상장 계획인 신설법인의 지분을 존속법인에 현물출자겠다고 밝혔다. 다만 인적분할 후 대주주 현물출자 방안은 사실상 물적분할 후 자회사 재상장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중복상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아니라, 대주주의 경영권 지분까지 강화할 수 있단 측면에서 주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현재는 지분 1.2%를 보유한 머스트자산운용이 주도적으로 분할안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롯데렌탈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어피너티가 롯데그룹의 경영권 지분은 시가보다 비싸게 인수하고, 롯데렌탈이 발행하는 신주는 시가 수준에 인수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2월 어피너티는 호텔롯데 등 주요주주가 보유한 지분 56%를 주당 7만7115원(당시 주가 2만9400원)에 인수했다. 롯데렌탈 이사회는 같은날 이사회에서 주당 2만9180원에 신주를 발행하는 안건을 의결한 바 있다.
롯데렌탈을 향한 공세는 지분 약 4%를 보유한 VIP자산운용이 주도하고 있다. VIP운용은 유상증자가 어피너티 측에 유리하게 설계돼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유상증자를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롯데렌탈은 정치권에서도 주목하고 있어 주주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남아있단 평가다.
자사주를 전량(지분 24%)을 기초로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하던 태광산업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기 직전 EB 발행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태광산업의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 이사회를 상대로 위법행위 중지 소송을 제기했는데 "발행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EB 발행은 상법 위반이자 배임행위"라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다.
금융감독원 역시 EB 발행 대상자와 자사주 처분 상대방을 기재하라고 명령했는데, 태광산업은 곧바로 발행대상을 한국투자증권으로 한정하는 이사회 안건을 통과시켰지만 결국엔 발행을 잠정 중단하게 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파마리서치, 롯데렌탈을 비롯해 최근 재계에서 논란이 일었던 기업들의 주주들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상법개정안 통과로 당분간은 기업들의 자본시장 거래가 위축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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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회에서 통과한 상법 개정안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 외에 ▲전자주주총회 도입 의무화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총 3%로 제한하는 방안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당장 권익이 침해 당했다고 판단하는 주주들은 이사진을 향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됐는데, 재계에선 앞으로 사외이사(독립이사)를 비롯한 외부 경영진을 영입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감사위원을 분리선출 하는 과정에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지분이 최대 3%로 묶이게 되면서 외부 세력의 공세에 노출될 여지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주관여펀드 또는 행동주의펀드의 기업을 향한 감시와 견제가 늘어날 수 있단 점에서 경영진의 활발한 경영활동이 저해될 수 있단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다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함에 따라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집중한 경영진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자발적인 밸류업 노력이 이어질 수 있단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