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논란 여파…SK엔무브 철회에 대기업 IPO '일제 중지'
입력 2025.07.07 07:00
    중복상장 금지 현실화…SK엔무브 네 번째 도전도 무산
    거래소, 모회사 주주환원책 요구…FI 구조와 충돌
    한화·LS·SK 등 대기업 자회사, 상장 준비 일제히 '멈춤'
    거래소, '중복상장 유형별 가이드라인 정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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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엔무브의 상장 철회로 인해 대기업 계열사들의 IPO 추진이 제동에 걸렸다. '중복상장 금지'가 현실화하면서,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 사이에서는 불확실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SK이노베이션은 이사회를 열고 재무적투자자(FI)인 IMM크레딧솔루션(ICS)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를 전량 매입키로 의결했다. 이는 지난 2021년 ICS가 지분 40%를 인수한 이후 4년 만의 재매입이다. 이로써 SK엔무브는 네 번째 IPO 도전 역시 무산됐다.

      코스피 상장을 추진 중인 여러 대기업 계열사들과 주관사들은 이번 철회 소식에 신중한 기류로 전환한 모습이다. 이제는 자회사 상장이 단순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작동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에서다. 거래소와 금융당국은 SK이노베이션에 '모회사 주주 보호 방안'을 요구했지만, 현물배당 등 주주환원책을 실제로 마련하기엔 FI와의 이해관계 조율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LG CNS 사례를 기점으로 불거진 '중복상장' 이슈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DN솔루션즈와 롯데글로벌로지스 역시 모회사가 상장사로, 중복상장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았지만 막상 수요예측 부진으로 자진 철회하며 논란이 잠시 사그라든 부위기였다. 

      중복상장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기업 자회사들의 증시 입성은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특히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약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중복상장이 주가 할인 요인으로 집중 부각되고 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약 18.4%로 일본(4.38%), 대만(3.18%), 미국(0.35%), 중국(1.98%) 등 주요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요 발행사들과 주관사들은 상장 준비 속도를 늦추고 관망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첫 타자'가 누구일지에 관심이 쏠리는 동시에, 거래소가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반기 대형 IPO 후보였던 한화에너지도 상장 준비를 일시 중단한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6월 초부터 실사 준비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로, IPO는 지배구조 개편과 연계된 사안으로 여겨졌다. 상장 후 기업가치를 부풀린 뒤 지주사와의 합병을 통해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유력했다.

      LS그룹은 IPO 순번을 일부분 조정해 현재 에식스솔루션즈(Essex Solutions) 상장을 우선 추진 중으로 파악된다. 미국 전선 계열사 인수법인인 에식스솔루션즈는 LS그룹의 직접 출자 자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중복상장 시비를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IPO 순번에서 앞섰던 LS이링크와 LS이브이코리아는 일단 준비를 멈춘 상태로 전해진다.

      최근 주관사 선정에 돌입한 SK플라즈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주관사 선정 프레젠테이션(PT)에서 '중복상장 해소 방안' 제시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플라즈마는 2015년 SK케미칼에서 물적분할된 혈액제제 전문기업으로, 이후 SK디스커버리가 지주사로 전환되면서 자회사로 편입됐다. LG에너지솔루션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쪼개기 상장’ 사례로 분류된다.

      코스닥 시장은 비교적 유동성 유입이 활발한 반면, 코스피 시장은 분위기가 무겁다. 특히 대기업 자회사 IPO를 둘러싸고 거래소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거래소는 현재 중복상장을 유형별로 나눠 허용 여부를 정리하는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분위기로는 대기업 계열사의 신규 상장은 당분간 어렵다고 봐야 한다"며 "SK엔무브 철회 이후 사실상 대기업 계열사 대부분 딜이 멈춰 섰고, 시장에서는 누가 '첫 타자'로 나설지가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