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우려 없고 실적 날아가니…희소 투자처로 주목
기존 빅2와 업종 자체가 달라…세대교체·지형변화 분기점
IPO 시점 목표가치 10조…추가 M&A에 시리즈 B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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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형 로레알을 내세운 구다이글로벌이 첫 외부 투자 유치전에 나서며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뷰티 산업 특유의 고무줄 몸값 논란에도 대형사들은 앞다퉈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고 기대와 질투가 뒤섞인 반응들이 쏟아진다.
이번 전환사채(CB) 발행에 이어 기업공개(IPO) 전 추가 시리즈 투자도 예고되는 만큼 수년 내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가 될 가능성도 일찌감치 거론된다. 어느 방향으로든 산업 지형도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IMM PE, IMM인베스트먼트, JKL파트너스, 프리미어파트너스, 키움PE 등 6~7개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구다이글로벌이 발행하는 8000억원 규모 CB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 기대 이상으로 투자 문의가 몰리면서 자체 블라인드 펀드를 보유한 대형 투자사 위주로 후보군이 좁혀졌다.
이번 CB는 향후 IPO를 겨냥한 시리즈 A 투자 유치로 통한다. 구다이글로벌은 이를 통해 4조원 규모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 발행 자금은 서린컴퍼니 인수와 지난해 품은 스킨1004(크레이버코퍼레이션) 잔여지분 확보에 쓰일 예정이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대형사들이 초기에 에쿼티를 쥐려고 줄을 서면서 발행 조건도 회사에 훨씬 유리해졌다. 기존에 공동투자에 나섰던 재무적투자자(FI)들도 끼어들 틈이 없는 모양"이라며 "여전히 출자자(LP) 사이에선 산업의 변동성 때문에 보수적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지만, 스터디를 마친 PE들은 지금을 투자 적기로 보는 듯하다"라고 전했다.
불과 몇달 새 구다이글로벌 투자 문틈이 좁아진 가운데, 몸값 산정 방식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회사가 몸값 산정 기준에 인수 예정 상태인 스킨푸드와 서린컴퍼니 실적을 당겨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적의 반영 시점과 자금의 쓰임새가 겹치니 기업 가치 평가의 적절성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회사가 수개월 만에 고자세로 돌아섰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들어간 쪽은 흥분하는데 못 들어간 쪽이 아쉬운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국내에선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 성격의 그로쓰캐피탈 투자처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신사업 자회사를 앞세운 대기업 프리 IPO 거래는 최근 중복상장 문제로 줄줄이 무산되고 있다. 일찌감치 조단위 몸값을 기록한 스타트업들은 변변찮은 실적 탓에 증시 문턱을 넘기 어렵다. 중복상장 우려가 없고 숫자도 확실한 구다이글로벌에 돈 많은 대형사들이 줄을 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비교적 보수적인 인수금융 주선기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전해진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번 CB 발행 외에 작년 인수한 포트폴리오의 리캡(자본재구조화)과 리파이낸싱(차환)도 함께 진행 중"이라며 "작년 연말과 1분기만 비교해도 현금흐름 증가세가 무척 가파른데 회사나 잠재 투자자들은 올해 구다이글로벌 연결 영업이익이 4000억원을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번 구다이글로벌 투자 유치전이 국내 뷰티 산업의 세대교체나 지형 변화 한가운데 있어 그렇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디 브랜드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곳들은 기존 대기업 중심 화장품 산업과 최근 부상하는 인디 브랜드의 업종 자체가 다르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중국 중심의 수출과 내재화 전략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대기업보다는, 몸집 가벼운 인디 브랜드들이 국내 제조 인프라(OEM·ODM)를 발판 삼아 외화를 긁어모을 차례가 됐다는 것이다.
투자업계에선 구다이글로벌의 수익성이 작년을 기점으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뛰어넘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크레이버코퍼레이션, 티르티르, 라카코스메틱스 등 지난 수년 인수한 브랜드들의 작년 한해 매출이 100~200% 오른 덕이다. 매출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 발생하다 보니 국내 비중은 10%를 넘기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구다이글로벌이 FI와 코인베를 꾸려 연거푸 M&A를 치를 때 레버리지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출이 연평균 2~3배 가까이 상승하면서도 30% 수준 마진율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실적이 해마다 달라지고 현금흐름이 좋아서 통상의 M&A 잣대로 보면 밸류에이션을 따지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관련 포트폴리오를 운용 중인 PE 한 관계자는 "기존 대기업들도 미국, 일본으로 눈을 돌렸는데 로드숍이나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잔뜩 짊어진 상태에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감을 못 잡는 분위기"라며 "반면 인디 브랜드들에게는 드라마나 아이돌 덕에 없던 시장까지 열리고 있다. 미국에서도 처음엔 색조만 팔리던 게 이제 기초화장품까지 불티나게 팔린다"라고 말했다.
구다이글로벌이 상장 때 10조원 이상의 몸값을 목표로 하는 만큼 내년 이후에 추가적인 투자 유치전도 예고된다.
현 성장세가 지속될 경우 실질적인 본게임은 시리즈 B 투자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통적인 수출 산업들의 경기가 부진하니 뷰티 산업의 해외 성과도 유독 두드러지고 국내 증시에서 동종 상장기업의 주가도 치솟고 있다. 다음 라운드에선 이번 CB보다 더 많은 투자자들이 각축전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로레알처럼 지역별 멀티 브랜드 전략을 완성하려면 유럽과 중동 등 미개척 시장 진출을 위한 추가 M&A도 필요할 것"이라며 "전략적으로도 IPO 전에 한번 더 몸값을 책정 받는 게 유리하고 내부적으로도 추가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