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자금조달 암초에 '승계수단' 논란까지…애경산업 인수 완주할까
입력 2025.07.10 07:00
    애경 인수전 가장 유력 후보…자사주 EB 발행 무산 변수로
    현금 두둑한데…'오너가 지분 높은' PEF 통해 투자 문제도
    흥국생명 사태 이후 또다시 논란…자본시장 활용 미흡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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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태광그룹이 애경산업 인수전에서 유력 후보로 꼽히는 가운데, 자금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최종 완주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태광그룹이 계획한 EB 발행이 제동에 걸리며 인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오너 3세 지배력이 높은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투자 주체로 나서면서 향후 승계 플랜과도 맞물려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태광그룹은 그룹 내 설립한 PEF를 통해 애경산업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티투프라이빗에쿼티(티투PE)는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참여했으며,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티투PE는 아직 투자 실적(트랙레코드)이 없는 운용사이지만, 사실상 태광그룹이 나선 것으로 평가되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태광은 애경산업이 매각 의사를 내비친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고, 실사도 가장 철저히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태광그룹이 ‘깜짝’ 발표한 새 성장동력에도 화장품이 포함됐다. 태광산업은 이달 1일 화장품과 부동산 개발, 에너지 기업 인수 및 설립에 올해 1조 원, 내년 5,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주력인 섬유·석유화학 산업의 부진이 장기화하며 기존 사업 구조에 안주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다.

      투자 로드맵과 동시에 외부 자금 조달 계획도 공개했다.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1%)을 담보로 약 3186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1일 EB 발행 공시에서 발행 상대방이 누락됐다며 정정명령을 내렸다. 발행 상대방을 명시하지 않아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주주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태광산업 이사들의 위법 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확산되자 태광산업은 결국 EB 발행을 잠정 중단한다고 2일 밝혔다.

      태광은 EB 발행 목적을 ‘뷰티 관련 신사업 투자’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상당 부분이 애경산업 인수 자금으로 활용될 계획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티투PE가 태광산업과 티시스 등 주주들의 자금을 더해 외부 출자금을 모아 애경산업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계열사인 흥국생명, 흥국화재, 고려저축은행 등 금융사 자금이 동원될 가능성도 거론됐다.

      태광산업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조 1279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이다. EB 발행이 불발되면서, 태광산업이 이 자금을 티투PE에 출자해 인수를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 경우에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오너 일가 지분이 높은 PEF가 그룹 자금을 받아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진행할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차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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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투PE의 최대 주주는 각각 41%를 보유한 티시스와 태광산업이다. 이호진 전 회장의 장남 이현준 씨와 장녀 이현나 씨도 각각 9%씩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현준 씨는 티시스 지분 11.3%를 보유해 티투PE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약 13.6%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전 회장의 직·간접 지분율은 약 13.8%에 달한다. 

      향후 펀드 운용 성과에 따라 배당이 이뤄지면, 3세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이현준 씨가 올해 만 31세(1994년생)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아직 본격적인 ‘승계 플랜’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티투PE가 향후 승계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자사주를 담보로 한 EB 발행에 이어, 티투PE의 애경산업 인수 시도와 관련해서도 적법성과 주주 이익 훼손 여부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태광그룹의 지원 없이 티투PE 컨소시엄이 애경 인수를 진행하려면 LP(출자자)로부터 프로젝트펀드 자금을 모집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LP들이 프로젝트펀드 출자를 꺼리는 분위기여서, 펀드레이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애경산업 밸류가 높기 때문에 주주와 출자자 모두를 설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인수에 성공해도, 태광그룹이 화장품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아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지만, 과거 화장품이나 생필품 사업을 직접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 향후 관리 역량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광그룹은 2010년대 초 이호진 회장이 구속기소되면서 투자활동이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 이번 티투PE 설립과 애경산업 인수 추진은 이 회장의 M&A 의지가 반영된 행보로 평가된다. 이 회장은 2000년대 공격적 M&A를 통해 태광의 주력 사업을 섬유·화학에서 방송미디어·종합금융으로 넓혔다. 흥국생명, 고려저축은행,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 현재 그룹 금융계열사 대부분이 이 회장이 인수한 곳들이다.

      그러나 2011년 구속 이후 태광그룹은 사실상 오너 경영이 중단됐고, 이 회장은 2021년 만기 출소 후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지만 경영에는 복귀하지 않고 있다.

      태광산업은 전통적으로 자본시장과 접점이 적은 그룹으로 꼽힌다. 창업주 고(故) 이임용 회장은 ‘은행 돈을 거의 쓰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철학으로 삼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태광그룹이 자본시장과의 거래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EB 발행에서도 금감원의 정정명령이 내려지자, ‘급히’ 한국투자증권을 발행 상대방으로 지정했지만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는 등 절차적 미흡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앞서 2022년 12월에도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주식은 한 주도 보유하지 않으면서 오너 일가를 위해 회사를 동원했다는 ‘우회 지원’ 비판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