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M&A·국제조세 등 실무형 인재 ‘부상’
승자독식 현상 심화 속 클라이언트들
어떤 전문가와 일하느냐 중요시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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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빅4 회계법인이 연례 파트너 승진 인사를 단행한 가운데, ‘스타 파트너’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는 회계법인 브랜드가 곧 신뢰의 척도였지만, 이제는 ‘어느 회계사와 일하느냐’가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회계사 개인의 브랜딩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최근 승진 인사에선 관리자형 리더보다는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실무형 파트너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주특기 없이는 부대표 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곧 실력 기반의 ‘승자독식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최근 신임 파트너 32명을 포함해 주요 보직자 인사를 단행했다. 류길주 파트너가 고객담당 대표로, 노영석·백봉준·이기복·이승환·진봉재 파트너가 부대표로 승진했다. 삼일 측은 “반도체, 플랫폼, 보험계리 등 유망 산업 전문가를 포함해, 국제조세, AI, 해외 상장 자문 등 글로벌·테크 역량을 갖춘 인재들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류길주 대표는 SK그룹 M&A 등에서 성과를 인정받으며 대표직에 올랐다. 최근 대기업들이 외국계 IB보다는 국내 회계법인을 선호하는 흐름 속에서, 삼일은 M&A 재무자문-회계실사-PMI까지 ‘원스톱’ 자문 제공 체제를 통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펀드레이징 자문까지 확대되며 회계법인의 역할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번 승진자 중 이기복·이승환 부대표도 주목할 만하다. 이기복 부대표는 조직문화 및 인사부서를 함께 이끌며 우수 인재 확보 전략의 선봉장으로 평가받는다.
이승환 부대표는 회계·재무 부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및 AI 기반 감사 시스템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그가 리드하는 ‘AX 노드’는 삼일의 신성장 조직으로, 기존 회계감사에 AI를 도입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삼일은 ‘AI Accountant’ 도입을 통해 K-IFRS 기준서 검색, 자동화 문서작성 등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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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삼일 관계자는 “연공서열보다는 자기 브랜드를 갖춘 전문가형 인재가 승진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부대표급이라면 시장에서 자신만의 이름값이 있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삼정회계법인 역시 실무형 부대표 전진배치를 강화했다. 이번 승진에서는 김동훈·김학주·박철성·원정준·이동근·전용기·정윤호 전무가 부대표로 올랐다.
김동훈 부대표는 뉴욕 KPMG 근무 경험을 갖춘 글로벌 세무 전문가로, 최근 국제조세 및 관세 이슈 대응 능력이 높이 평가됐다. 원정준 부대표는 오너 및 중견기업 대상 M&A 자문에 특화된 인물로, 최근 애경산업 매각 자문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김이동 재무자문 대표와 함께 차세대 M&A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정윤호 부대표는 ERP 및 프로세스 혁신 전문가로, 삼정이 운영하는 AI 기반 감사 검색 시스템 ‘오딧세이+’와 함께 AI 회계 혁신의 중추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한편, EY한영과 딜로이트안진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한영은 1명의 부대표 승진 인사만 발표했고, 안진은 아직 관련 인사를 내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내부 정비에 초점을 맞춘 상황”이라며, “외부 브랜딩보다는 조직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흐름은 단기 인사 이벤트가 아니라 업계 구조 변화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에는 일정 연차만 채우면 승진이 가능했고, 회계사는 ‘보수적 직장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반면 주요 로펌 변호사들은 오래전부터 개인 브랜딩, 전문 트랙 개발 등에 적극적이었다.
이제는 회계업계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고객사의 요구가 복잡해지고, 법률·회계·세무가 융합된 형태의 자문이 늘면서 회계사 개인의 트랙레코드가 클라이언트 선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한 회계법인 부대표는 “이제 고객이 삼일인지 삼정인지를 따지기보다, 그 안에서 어떤 파트너가 일하는지를 먼저 본다”며 “스타 파트너에게 일감이 몰리는 승자독식 구조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