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담합 실익 없어" 반발에도 과징금 불가피
이재명 정부 상생금융 기조에 과징금 감경 기대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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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의혹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조 단위로 거론되는 과징금 규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사 착수 2년을 넘긴 상황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하반기 중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단위로 거론되는 과징금이 현실화할 경우, 은행권은 자본비율 등 재무 건전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은행권의 고심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새 정부의 '상생금융' 기조가 제재 수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권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보니, 공정위가 정무적인 고려 하에 과징금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월,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이 LTV 기준을 사전에 공유하거나 이를 기준으로 상품을 조율했다는 혐의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당시 공정위는 이 같은 정보 교환이 가격 담합에 준하는 행위라고 보고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이후 재심 요청과 사실관계 다툼이 이어지면서 전원회의에서 결론이 유보됐고, 올 2월 재조사가 진행됐다.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대한 은행권의 의견서 제출 기한은 오는 8월 1일까지로, 벌써 두 차례나 연기된 상황이다. 그만큼 은행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크다는 평가다. '조 단위' 과징금은 4개 은행이 나눠 부담한다 하더라도 각 사별로 수천억원 수준이라 당장 실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만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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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과징금 부과 자체는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은행권은 "공유된 정보가 이미 공공에 드러난 자료에 불과하며, 경쟁을 제한할 의도도 실익도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공정위 입장에선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2년에 걸친 전방위 조사 끝에 '혐의 없음'으로 매듭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과징금 규모는 총 수천억 원에서 최대 조 단위까지 거론된다. 공정위는 위반 행위의 지속 기간, 피해 가능성, 시장 영향도 등을 기준으로 과징금 규모를 산정하고 있어 제재 수위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최근 새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상생금융' 기조가 이번 제재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이익만 추구하는 금융은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은행권에 사회적 책무를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와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배드뱅크 설립, 고금리 이자부담 완화, 청년·서민 금융 지원 확대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은행권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이처럼 새 정부가 은행을 '정책 파트너'로 삼아야 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과징금 부과가 정책 추진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공정위의 결정이 정무적 고려와 무관할 수 없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한 국회 관계자는 "공정위의 독립성과 엄정한 법 집행 원칙은 중요하지만,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금융정책의 연속성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며 "결국 은행이 상생기금으로 수천억을 내고 또 과징금까지 수천억을 내는 구조가 된다면, 실질적인 상생정책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형식적으로는 제재를 유지하되, 과징금 부과 수위를 조절하거나 분할납부·감경 등을 병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거론된다. 과거 대형 담합 사건에서도 실제 제재 수위는 법적 최대치보다 낮아진 사례가 많았던 만큼, 이번 건도 정책적 유연성이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 역시 이런 흐름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담합이라는 혐의 자체가 억울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결국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알고 있다"라며 "현 정부의 기조에 맞게 상생금융 확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면, 제재 수위에서도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