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대출로 보면 기업·증권사 모두 부채 반영 부담
회계기준원 공식 판단 없고 '미러링'도 자율 영역
관계사 지분 활용한 PRS는 대체로 파생상품 인정
어려운 기업 자금 조달처…"정부가 막기 부담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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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대기업 사이에선 주가수익스왑(PRS) 방식의 자금 조달이 유행했다. PRS는 만기 시점에 양도 자산의 가치 변동분을 사후 정산하는 파생상품으로 기업은 재무구조가 악화하지 않으면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계열사 부당지원 문제가 불거졌던 총수익스왑(TRS)보다 규제 부담도 덜하다.
증권사 입장에선 PRS 계약을 활용해 대기업에 돈을 대주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사실상 대기업이 보증을 서주는 방식이다 보니 위험성도 낮다. 이에 증권사들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 PRS 영업에 나섰는데 최근 변수가 생겼다.
작년 한 대형 증권사는 회계법인을 통해 회계기준원에 PRS 회계처리에 대해 문의했다. 증권사가 PRS 계약을 통해 기업 자회사 지분 의결권을 넘겨 받되, 가격변동위험은 상대 기업이 계속 질 경우 어떻게 회계처리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계기준원은 증권사가 PRS 계약을 통해 집행한 자금을 부채로 인식하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기준원 의견대로면 증권사는 부채 증가 부담이 커지고 영업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선 금융감독당국이 PRS 계약 관련 점검에 나섰다. PRS 거래를 한 기업들의 감사인 회계법인에 대해 관련 내용을 문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당국에서 PRS 계약이 있는 기업들의 감사 담당 파트너들에게 연락해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시장에서 PRS 회계처리 문제가 거론되니 일단 현황부터 먼저 파악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가 부채를 인식하면 PRS 계약의 상대인 기업도 그에 대응해 같은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할 수 있다. 전엔 계약에 따른 가치 감소분만 부외 부채로 인식했다면 앞으로는 전체를 부채로 잡아야 한다. PRS를 활용할 실익이 줄어든다.
PRS는 실질은 담보대출과 유사함에도 파생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당국이 엄격한 시선을 적용하면 기존의 업무 관행이 깨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증권사 모두 PRS 회계처리 문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시선을 모으고 있다.
다만 PRS 거래의 당사자들은 대체로 회계처리 문제가 더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작년 회계기준원에 대한 문의는 신속질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정규질의 때는 협의체를 거쳐 답변을 내는 만큼 공식적인 효력이 있지만, 신속질의는 회신이 빠른 반면 연구원의 개인 의견에 그친다. 아직 공식적으로 회계처리 방침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올해 회계기준원에 PRS와 관련한 정규질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울러 지난 번 내린 답은 '증권사의' 회계처리에 대한 것이다. 기업의 회계처리에 대해선 판단을 내린 적이 없다. 거래 상대방에 대칭적으로 맞춰 회계처리(미러링)하는 것 역시 자율의 영역이고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회계실무상 미러링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회계법인들도 있다"며 "IFRS(국제회계기준)에서도 미러링에 대해선 명확하게 판단한 적이 없고, 자율적인 판단의 영역으로 남겨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PRS의 기초자산이 무엇이냐, 자산이 진정으로 상대방에 넘어갔느냐에 따라 회계처리 방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지금까진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없다.
PRS는 세부 계약에 따라 사안이 복잡하니 모든 사례를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비계열사 주식(금융자산)을 PRS 계약을 통해 넘긴 경우엔 대체로 기업이 여전히 위험과 효익을 가진다고 본다. 담보부차입이라는 것이다.
반면 관계기업 지분 PRS는 인수자가 처분권과 의결권, 배당권 등을 확보했다면 주로 파생상품으로 인식한다. 최근 이뤄진 대부분의 PRS는 후자에 가깝다. PRS 거래를 준비 중인 대기업, 증권사들도 검토 결과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IB 임원은 "금융상품 PRS의 경우 위험과 효익이 처분자에 남으니 대출로 회계처리를 하지만, 자회사 지분은 그렇지 않으니 파생상품으로 인식하면 된다"며 "당국이 살펴본다고 하니 조심스럽긴 하지만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IB 임원도 "회계법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우리가 배당권과 의결권, 처분권 등 모든 권리를 확보한 자산이기 때문에 기존 PRS 회계처리에 이상이 없다고 보고 있다"며 "앞으로 PRS 관련 거래를 하지 못할 것이란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PRS는 SK, 롯데, 효성 등 사정이 녹록잖은 그룹들이 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회계처리 문제까지 불거지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 카드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당국도 PRS 회계처리 문제를 크게 키우기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국계 투자사 관계자는 "PRS를 활용하는 기업들은 자금이 아쉬운 곳이 대부분인데 PRS까지 막히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석유화학이나 이차전지 등 고용, 지역 경제와 관련된 기업이 많기 때문에 정부가 PRS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