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주가부양 드라이브에 "기회 생긴다"
타깃만 돼도 주가 급등…펀드 연대 가능성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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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법 개정과 정부의 주가 부양 드라이브가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투자 인력을 확보하고 기업들과의 물밑 소통을 늘리는 한편, 펀드들 간 '합종연횡' 가능성도 점쳐지는 분위기다.
10일 IB(투자금융)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행동주의 펀드 달튼인베스트먼트는 한국법인 인력 채용을 진행했다. 달튼은 올해 2월 달튼코리아(Dalton Korea)를 설립하고 임성윤 미국 본사 파트너와 메릴린치 한국 리서치 헤드 출신 송기석을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홍콩계 행동주의 펀드인 오아시스매니지먼트도 몇 달 전부터 한국 투자팀 인력 채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채용하는 인력은 한국 기업 경영진과의 소통을 주요 업무로 맡게 될 전망이다. 이는 오아시스가 국내 기업들과 본격적으로 접점을 넓히며 한국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이미 투자 행보가 드러난 곳들 외에도 복수의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이 한국 기업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물밑에서 인재를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은 최근 한국 정부의 ‘주가 부양’ 집중 정책에서 기회를 엿보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코스피 5000 달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최근 한 달간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19%, 11% 넘게 오르며 전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9일 오후 기준 코스피는 장중 3,130대를 기록하며 또다시 연고점을 경신했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발의를 예고하자, 증권·보험·지주 등 자사주 비중이 높은 업종이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헤지펀드 등 행동주의 전략을 주된 투자전략으로 삼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방안을 보다 다변화할 여유가 생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에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에 더해, 사외이사를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할 때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그동안 재계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소액주주들의 무분별한 손해배상·배임죄 소송과 외국계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을 야기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업계에서는 다만 소액주주들이 소송 비용 부담 등으로 인해 주주 행동을 대폭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펀드들이 한동안 한국 시장은 '그닥 실익이 없다'고 봤는데, 최근 주식시장 상승세 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며 “이사회 진입 등 실제 주주 관여(engagement) 성과가 없어도, 행동주의 타깃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주가가 급등해 상당한 투자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주가 부양 동력을 위해 여러 펀드가 힘을 모아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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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시아태평양(APAC)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의 중요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라자드(Lazard)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APAC 지역 행동주의 캠페인은 57건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캠페인에 참여한 펀드 수도 186개로 사상 최대를 찍었다.
새롭게 캠페인을 시작한 곳들도 늘었다. S&P Global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글로벌에서 총 1,210건의 행동주의 캠페인이 시작됐다. 이는 2023년 대비 3%, 2019년과 비교해 20% 증가한 수치다. 전체 캠페인의 81%가 ESG 관련 요구였으며, 성공 또는 합의 비율은 15%였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아시아 시장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오랫동안 높은 현금성 자산, 낮은 ROE, 보수적 지배구조로 인해 행동주의 펀드의 주요 타깃이 되어왔다. 2023~2025년 들어 기시다 총리의 일본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ROE·PBR 1배 이상)를 공식적으로 강조하자,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사에 “자본 효율성 강화를 위한 구체 계획을 공시하라”고 요구하자, 행동주의 펀드들이 이를 빌미 삼아 기업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법이나 규제가 일본보다 까다롭고, 기업 지배구조상 대주주(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행동주의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며 “그러나 상법 개정, 주주환원 등 이번 정부가 내놓는 여러 정책이 주식시장에 미칠 파장을 펀드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