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재미못본 'ICT 혈맹'…SK-카카오 동행, 블록딜로 마무리
입력 2025.07.11 12:18
    SK텔레콤은 카카오·카카오는 SK스퀘어…지분 전량 매각
    3000억원씩 지분 맞교환했지만 시너지 부재
    별다른 성과 없이 각자의 투자금 회수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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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과 카카오와의 ICT 혈맹이 시간 외 대량 매매(블록딜)로 마무리를 맺었다. 양사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지 약 5년 9개월 만이다. 시장에서는 기대했던 인공지능(AI) 분야에서의 협력 보다는 단순 지분 투자로 동맹 관계가 마침표를 맺었다고 평가했다.

      11일 카카오의 투자전문 자회사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SK스퀘어 주식 248만6612주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매각 금액은 4297억원, 주당 단가는 17만2800원이다. 이는 전날 SK스퀘어 종가(18만3600원원) 대비 5.88% 할인된 가격이다. 모건스탠리와 UBS가 매각 주관 업무를 맡았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처분 목적에 대해 "AI 투자 등 미래 투자 재원 확보"라고 밝혔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SK스퀘어 주식을 그간 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FV-PL) 계정으로 분류해 뒀다. SK스퀘어 주가가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호실적에 힘입어 크게 급등하자 현금화에 나선 모습이다. SK텔레콤의 카카오 지분 매각 이후 3개월 만의 조치다.

      앞서 2019년 11월 SK텔레콤은 카카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3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맞교환했다. SK텔레콤이 자기주식을 카카오에 팔고 카카오는 신주를 발행해 SK텔레콤에 배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SK텔레콤은 카카오 지분 2.53%(217만7401주), 카카오는 SK텔레콤 지분 1.57%(125만6620주)를 추가 현금 유출 없이 확보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지분 스와프를 두고 'ICT 혈맹'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과감한 결단으로 평가했다. ICT 시장에서 국내 이동통신 1위 사업자와 모바일 서비스 1위 사업자 간 협력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사는 그전까진 불편한 관계에 더 가까웠다. 카카오는 지난 2010년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당시 이동통신자 입장에서는 건당 과금이 이뤄지는 문자메시지 서비스 이용량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또 카카오는 결제, 내비게이션, 쇼핑, 택시 호출, AI 등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SK그룹과 경쟁을 벌여왔다. 이런 이유로 양사의 파트너십은 서로의 출혈경쟁을 막고, AI 등 미래 주요 사업 영역에서 서로의 플랫폼과 가입자, 신기술 등의 역량을 빌려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파트너십 당시 통신, 커머스, 디지털콘텐츠, 미래 ICT 등 4대 부문에서 전방위 협력을 예고했으나, 기대했던 시너지는 부재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를 함께 조성해 운용하고, 보유하고 있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이모티콘을 공동 제작하는데 그쳤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본격적으로 하려던건 2020년 삼성전자-카카오-SK텔레콤 간 AI 사업을 위한 초협력이었다"며 "당시 슈퍼컴퓨터를 공동 구매하고, 협업을 도모했으나 3사가 원하는 노선이 달라서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2021년 11월 SK텔레콤의 반도체·ICT 투자 전문 회사로 SK스퀘어를 인적분할하면서 카카오는 SK텔레콤, SK스퀘어 두 회사의 지분을 모두 보유하게 됐다.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SK텔레콤은 카카오 지분 전량을, 카카오는 SK스퀘어 지분 전량을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ICT 혈맹이 사실상 종료됐음을 시사한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여전히 SK텔레콤 지분 1.79%을 보유 중이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 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 2123억원으로 집계됐다. 카카오는 "당분간 SK텔레콤 지분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ICT 혈맹으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던 SK텔레콤과 카카오의 전략적 제휴 관계는 별다른 성과 없이 각자의 투자금 회수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3000억원씩 지분 투자를 단행해 카카오는 SK스퀘어 매각으로 1297억원가량의 차익을 남겼으며, SK텔레콤 주식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블록딜 시점인 지난 4월 기준 카카오의 주가 하락으로 952억원 정도의 이익을 남기는 데 그쳤다.

      또 다른 관계자는 "SK텔레콤 입장에서는 만약 올해 하반기에 카카오 지분을 매각했으면 더 큰 차익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라며 "카카오도 당분간 SK텔레콤 지분을 팔지 않겠다고 했으나, 현금이 필요해지면 지분 정리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