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까지 부채 줄이고 수익성 끌어올려 신용등급 회복해야
석유화학 매각·영구채 정리 등 전 사업 재무개선 작업 예고
금융권도 연내 자산매각 성과 관심 多…이달 말 로드맵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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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수년간 지속된 재무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다. 액화천연가스(LNG) 밸류체인 유동화와 SK온 지원 작업을 마쳐도 부채를 줄이고 수익성을 회복해야 하는 만큼 전방위 사업 조정이 예고된다. 석유화학 등 비주력 저수익 사업 매각과 자회사 합병을 포함한 종합 로드맵이 이달 말 발표될 전망이다.
10일 SK이노베이션은 LNG 밸류체인 유동화를 위한 입찰 절차를 진행했다. 자금력에서 앞서고 그간 SK그룹과 인프라 거래 이력이 많았던 KKR, 브룩필드와 종합금융 진출을 위해 우호적 금리를 내건 메리츠금융 등 3자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누가 승기를 쥐건 SK이노베이션은 단번에 4조~5조원 규모 유동성을 확보하게 된다.
확보한 자금은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재무적 투자자(FI) 조기 상환에 활용될 예정이다. FI들은 지난 합병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권리를 보강해둔 만큼 당초 계약보다 나은 수익률로 회수가 가능할 전망이다.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와 SK온 모두 FI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양사 합병을 비롯해 추가적인 지배구조 변경 작업이 남아 있다.
큰 숙제를 해결하고 나서도 장용호 신임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주도로 대대적인 재무개선 작업이 예고된다.
장 총괄사장은 이달 초 타운홀미팅을 열고 임직원 대상으로 2026년까지의 재무개선 목표치를 제시했다. ▲내년까지 회사 부채를 8조원 감축하고 ▲상각전영업익(EBITDA)를 조 단위로 증대시켜 ▲글로벌 신용도를 투자 적격 등급으로 돌려놓겠다는 3대 목표다. 구체적인 재무개선 로드맵은 이달 말 예정된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공유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목표에 맞춰 숨 가쁘게 추가 작업들을 궤도에 올려놓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LNG 밸류체인 유동화와 SK온 지원을 마치면 SK이노베이션의 곳간 사정은 전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부채로 잡히지 않는 구조를 모색해도 실상은 배당 형태로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을 확충하는 동시에 수익성 낮은 사업을 매각하고 부채를 상환해야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
1차적으로는 SK이노베이션이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1조원 규모 유상증자에 나선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말 연결기준 총차입금이 51조원, 순차입금이 35조원까지 불어나며 부채비율 200%를 넘겼다. SK이노베이션 개별로도 1년 만에 차입금 10조원이 쌓였다. 주력인 정유사업이 국제유가 하락으로 부진한 만큼 당장 차입금을 상환하긴 어렵고 대신 자본금을 채워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지난 4월부터 모회사 SK㈜의 지원 여부에 시선이 쏠렸는데, 이번 PRS에서 신용보강을 제공해 주기로 했다.
석유화학 사업의 자산매각에도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경쟁사에 SK지오센트릭 보유 납사분해설비(NCC)의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확인된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산업단지인 울산에 소재한 SK지오센트릭 NCC는 그간에도 여러 협상 테이블에 올랐으나 진전이 없었던 잠재매물로 통한다. 이번 협상 대상자는 국내에서 납사 수급선을 찾고 있었던 터라 종전보다 진지하게 제안을 들여다보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SK인천석유화학 역시 수익성 회복 방안이 오르내린다. 수도권 유일 정유·석유화학 회사로 항만을 끼고 있는 만큼 한때는 중국 시장 파리자일렌(PX) 특수를 누렸으나 현재는 당기순손실이 지속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6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금리 재설정일이 순차로 돌아온다. 발행 시점보다 시중금리가 떨어지긴 했으나 2회차(금리 7.3%), 3회차(6.49%) 신종자본증권의 스텝업 마진이 각각 1.5%포인트에 달해 더 나은 조건으로 영구채를 차환하거나 상환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도 민간에 석유화학 구조조정 아이디어를 지속 주문하고 있고, SK이노베이션에 장용호 사장이 내려오면서 관련 작업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라며 "계열에서 발행된 영구채 대부분은 증권사들이 직접 떠안고 있어서 금융권 전반에서도 관심이 높다"라고 전했다.
분리막 자회사인 SK IET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인다. 지난해 외국계 투자은행(IB)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지만 전방 업황이 가라앉고 있어서 큰 성과는 없었다. 그룹 계열사인 SKC에서도 실리콘 음극재 등 추진하던 신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주력이던 동박 계열사 SK넥실리스의 매각이 재추진되고 있다. 이미 작년부터 배터리셀 담당 SK온을 제외한 소재 사업 전반을 정리 대상으로 정해둔 만큼 SK IET 매각 가능성도 재차 거론된다.
연내 일부 자산이라도 매각에 성공한다면 부채를 줄이는 단계에 돌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주력 사업 대부분이 부진한 상태라 금융권에선 현 추세대로 부채가 늘면 연말께 한해 이자비용만 2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수장까지 교체한 만큼 매각 성과를 무조건 내놔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순차입금이 30조원을 넘어서는 상태면 주력 사업장의 업황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더라도 수익성을 갖추기 어렵다. 작년 합병으로 몸집이 너무 무거워지기도 한 상황"이라며 "금융권에선 SK온 수혈 작업보다도 올해 내 자산 매각 성과를 내는 걸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