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몰아붙인 회계기준원…2분기 결산 고민 깊어졌다
입력 2025.07.17 17:09
    회계기준원, '지분법 미적용'에 날 선 비판
    교통정리 할 금융감독원 수장은 공석
    2분기 결산 앞두고 스스로 결단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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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생명이 상반기 결산을 앞두고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해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자회사인 삼성화재에 지분법을 적용하게 되면 실적은 증가하지만, 그만큼 배당 부담이 커진다. 과거 판매했던 유배당 상품 관련 보험부채를 반영하지 않은 '일탈회계'에도 비판이 이어진다. 개별 회사를 콕 집어 비판한 한국회계기준원의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생명은 2022년 금융감독원에서 내린 질의회신에 따라 일탈회계를 지속해왔다. 회계기준원이 해당 회신에 대해 '중요한 사실이 누락 혹은 변경된 경우 효력이 없다'고 지적함에 따라 금감원의 다음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원장의 공석'으로 인해 당장 눈 앞의 2분기 실적은 삼성생명의 '결단'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회계기준원, 공개 비판 나선 이유는

      금융권에선 기준원이 개별 회사의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게 드문 일이란 반응이다. 회계처리에 혼란이 생기더라도 개별 회사가 먼저 기준원에 문의하고, 기준원이 논의를 거쳐 답변을 회신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런 회계 방식을 선택하는 보험사가 국내에 삼성생명 한 곳뿐인데 이 회사를 지적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는 점에 놀랐다"며 "공개적인 지탄의 대상이 됐으니 회사로선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회계기준원과 삼성생명의 마찰은 지난 4월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 회계사가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 회계처리 방식과 관련해 회계기준원에 질의를 올렸는데, 대외비였던 이 내용을 삼성생명이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정보 유출'로 인지한 회계기준원은 지난 5월12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에 이에 대한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준감위는 회계기준원이 조치를 요구한 시한(6월2일)을 한참 지난 6월26일 삼성생명에 후속조치를 권고했고, 삼성생명은 자체 조사 후 별 조치 없이 사안을 종결했다. 

      비슷한 시기 계약서비스마진(CSM) 연단위 구분 폐지를 연간 업무계획으로 기재한 삼성생명의 '사내 배너'도 문제가 됐다. 해당 내용은 회계기준원의 판단과 의견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를 알게 된 기준원은 "삼성생명은 본 사안을 통해 한국회계기준원의 명예와 제도적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준감위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으나, 결국 삼성생명 측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한상 원장은 16일 토론회에서 "회사가 이익조정을 위한 수단을 개발, 실행하고 회계기준 개정 로비를 시도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라며 "기준원이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감히 삼일회계법인이 지분법 리뷰 해보자고 말이나 꺼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해당 토론회의 배경으로 정치적 배경을 꼽기도 한다. 현 이한상 회계기준원장은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 취임한 인사다. 국민의힘 선대본부에 소속돼있었고, 윤석열 전 대통령 후보 당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해 활동했다. '이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만큼, 전문성과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토론회를 연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이 원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삼성화재에 지분법 적용한다면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화재 주식을 '기타포괄손익 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FVOCI)'으로 분류하고 있다. FVOCI로 분류되면 자회사의 공정가치가 변해도 모회사의 당기순이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삼성화재 실적이 삼성생명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는 효과를 준다.

      한국회계기준원은 이런 회계 처리 방식을 지분법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분법은 통상 자회사 지분율이 20% 이상일 때 적용된다. 지분율이 20% 미만인 경우에는 '유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될 때 예외적으로 반영된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지분법을 적용하게 되면 삼성생명의 이익이 급증하게 된다. 이런 회계처리를 하지 않는 건 사내유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란 게 회계기준원의 주장이다.

      회계기준원은 "삼성화재가 지금처럼 연간 2조원의 이익을 기록한다고 가정하면 약 15%인 3000억원 가량의 이익이 삼성생명 재무제표에 반영된다"며 "해마다 수천억원의 배당가능재원이 생기는데 이를 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지배주주를 위한 사내유보로 영원히 묶어두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회계기준원은 과거 삼성생명이 판매했던 유배당 상품 관련 '일탈 회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2022년 금융감독원은 유배당 상품으로 구매한 주식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장래 배당분을 보험부채가 아닌, '계약자지분조정'으로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유배당보험을 판매했던 삼성생명 등 6개 보험사가 일탈 회계에 참여했다. 문제는 올해 초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판매하면서 이 전제 조건이 깨졌다는 점이다. 이에 회계기준원은 일탈 회계에서 벗어나 보험부채를 재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혁 회계기준원 연구위원은 "5개 보험사가 계약자 지분 조정한 금액은 총 2200억원 정도로 알고 있는데, 삼성생명은 9조원으로 규모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없이 다가오는 상반기 실적 발표

      이런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장의 공백은 삼성생명에 더욱 부담이다. 기본적으론 지분법 적용 대상이 아닌 가운데 '유의적 영향력'을 판단하는 건 감독당국의 몫이다. 현재 삼성생명의 회계처리 방식은 2022년 12월 금감원이 질의회신문을 통해 이를 용인한 바 있다.

      실제 이복현 전 금감원장은 앞서 "지분율이 20% 미만이면 지분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회계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삼성생명의 현 회계 처리에 한 차례 더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 전 원장이 지난 6월5일 임기 만료로 퇴임한 후 한 달 넘게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조직 차원의 변화를 앞두고 있어 개별 회사에 대한 조치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결국 삼성생명은 당분간 금융당국의 판가름 없이 스스로 회계 처리 방식을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분기 실적은 약 한 달 뒤인 8월 중순께 공시될 예정이다. 당국의 제재가 없는 이상 기존 회계처리 기준을 따를 수 있지만, 한국회계기준원과 여론 등의 역풍이 뒤따를 수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현재로선 회사가 내놓을 수 있는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