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석화 구조조정에 기여해달라" SOS에 PEF업계 손사래 치는 이유는
입력 2025.07.22 07:00
    새 정부, PEF에 석유화학 구조조정 SOS
    GIP-헤스, KKR-FL셀레니아 외엔 전부 실패 사례
    칼라일·TPG·아폴로 등 글로벌 대형 PE도 '미끌'
    실현 가능성 불투명…당분간 산은 중심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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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HD현대와 롯데그룹의 대산NCC 통합을 계기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자율 구조조정이 첫 발을 뗀 가운데, 정부가 사모펀드(PEF)의 참여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무적투자자(FI)의 자본력과 운영 역량을 구조 혁신에 활용하려는 취지지만 산업 특성과 과거 실패 사례, '먹튀 논란' 우려 등으로 실행 가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임 정부는 최근 복수의 국내 PEF를 대상으로 석유화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문의했다. 일부 운용사는 미국과 이탈리아 등 해외 사례를 조사해 보고했으나, 국내 산업 환경과 정책적 제약을 고려할 때 실제 적용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판단이 주를 이뤘다.

      이번 논의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대산 NCC 설비 통합 양해각서(MOU) 체결을 앞두고 본격화됐다. 새 정부는 자율적 통합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산업은행도 합작법인(JV) 형태 통합에 금융 지원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다만 국책은행만으로는 산업 전반의 구조 혁신을 감당하기에 자본 여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수조원대 석유화학 자산을 대형 PEF가 성공적으로 인수·회수한 사례가 존재한다. 글로벌 인프라 전문 사모펀드인 GIP는 2014년 미국 헤스(Hess)의 백킨 셰일 지역 중류 자산 지분 50%를 26억7500만달러에 매입했다. 이후 2023년 미국 에너지기업 셰브론(Chevron)이 회사를 약 53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GIP는 9년간 3배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하고 약 53억달러의 차익을 실현했다. 

      앞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도 2005년 이탈리아 윤활유 회사 FL셀레니아를 약 9억8000만달러에 인수, 2년 후 말레이시아 국영기업 페트로나스(Petronas)에 약 13억7000만달러에 매각했다. 단기간 내 뚜렷한 수익 실현과 구조개선 사례로 꼽힌다.

      그럼에도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이러한 모델을 단순히 이식하기엔 제약이 많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반응이다.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된 영향이다. 

      일례로 칼라일(Carlyle)은 2007년 인수한 석유회사 PQ Corp의 기업공개(IPO)를 시도했으나 무산됐고, 2020년 회사는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TPG가 인수한 알레리스(Aleris)도 2009년 파산을 겪은 후 중국 자본에 매각됐는데, 이때 TPG는 8억3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비교적 최근인 2023년엔 아폴로가 브라질 회사 브라스켐(Braskem)을 28억6600만달러에 인수하려 했으나 여러 규제에 부딪혀 철회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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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석유화학 산업의 자본집약적 특성과 PEF의 단기 수익 추구 전략 간 구조적 불일치도 문제다. 석유화학은 대규모 초기 투자와 장기 회수 기간이 필요한 반면, 대부분의 사모펀드는 3~5년 내 투자금 회수를 목표로 한다.

      성공 시 과실이 커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론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내 PEF 관계자는 "산업 구조조정 명분으로 뛰어들었다가 성공적 회수를 해도 론스타 사례처럼 '먹튀'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며 "국내 자본으로 투자해도 여론은 부정적일 수 있어 위험 대비 수익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간산업이자 지역 민생과 직결된 사안에서 PEF식 구조조정과 비용 개선에 대한 반감 역시 변수다. 석유화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인력 감축과 설비 통폐합이 지역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PEF의 급진적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 어려울 수 있다. 

      물론 현 정부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고위 관계자는 "샤힌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사가 두어곳 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사모펀드의 석유화학 구조조정 참여는 자본 여력과 전문성 측면에서는 매력적이지만, 사회적 수용성과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당분간은 산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이 주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한 정책금융 관계자는 "롯데-현대 사례처럼 민간 주도 MOU 체결 후 정부가 후속 조치를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며 "PEF도 장기적으로는 역할이 있을 수 있지만, 당장은 여론과 정책 리스크를 고려하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