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도 ‘관망 모드’ 전환
이재명 정부 스탠스 아직 ‘깜깜’ 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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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활발하게 전개되던 사모펀드(PEF) 규제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한때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과 노동계는 물론 금융당국까지 규제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현재는 관련 논의가 사실상 멈춘 상태다. 부동산 금융 이슈에 정책 관심이 쏠린 데다 금융감독 조직 개편이라는 내부 변수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및 금융당국의 최근 분위기를 종합하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PEF 규제 관련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앞서 이전 정부 후반기 적대적 M&A와 관련해 PEF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와 정치권에서 제기됐고, 노동계는 홈플러스 매각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 우려를 표하며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먹튀 투자자’ 이미지로 PEF를 비판했다. 대선 시점에 국회에서도 사모펀드 규제를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됐다.
대표적인 법안은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사모펀드 차입 한도 제한안’이다. 기존 순자산의 400%까지 허용되던 차입 한도를 200%로 낮추고, 금융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는 내용이다. 이는 일부 PEF들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해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 악화로 매각에 나서는 ‘먹튀’ 논란이 잇따르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금융당국도 당시에는 사모펀드 규제 강화에 적극적이었다. 당국은 PEF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PEF의 산업 기여도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내실 점검에 착수했다. 특히 금융감독원 내부에 사모펀드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되며 제도적 감시 강화 움직임이 포착됐다. 금감원이 등록제로 운영되는 사모펀드를 실질적으로 방치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들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PEF 규제는 현재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을 통해 대통령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이후 당국의 정책 역량은 부동산 관련 리스크 관리에 집중되고 있다.
여기에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라는 불확실성도 작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조직 자체의 생존 여부가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 정책 추진은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감독 체계 개편 논의가 끝날 때까지는 PEF 규제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변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다. 이재명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주요 경제 아젠다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활발해질 경우, 이를 뒷받침할 자금조달 파트너로서 사모펀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무분별한 규제가 오히려 시장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PEF업계 관계자 역시 “정부 정책 기조상 사모펀드 규제를 일괄적으로 강화하기보다는 레버리지 규제 등 일부 보완적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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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PEF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모펀드에 대해 사전 인가제, 정보공시 확대, 투자자 보호 강화 등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등록 중심의 사후 규제에 머물러 있으며, 운용구조 점검이나 질적인 정보공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럽은 AIFMD 2 시행으로 사모펀드에 대한 감독을 한층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리스크 관리와 정보 투명성 확보를 위한 규제 개편을 추진 중”이라며 “국내도 국제적 흐름을 참고해 선제적인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PEF가 단순히 투자 수단이 아닌 산업 구조 재편과 기업 가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능동적 자본’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규제와 지원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당국의 관심이 일시적으로 옮겨갔다 하더라도, 시장 신뢰를 위한 제도적 정비 논의는 다시 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른 PEF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규제에 대해서 수면 아래에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부상할 수 있다“라며 ”다만 구조조정 거래 등 사모펀드 역할론에 대한 재평가도 어느정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