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출시 6개월 만 갑작스러운 청산 결정
롯데바이오 대표도 급히 교체…"결정 섣불러"
-
롯데그룹의 위기가 바이오의약품을 비롯한 신규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롯데그룹이 이달 진행한 사장단 회의에서 헬스케어 사업 부문 임원들은 자취를 감췄고,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규모 있는 수주 계약을 체결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롯데그룹이 핵심 사업 부문의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만큼, 미래 먹거리로 제시한 사업에 제대로 된 지원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그룹은 이달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그룹사 전반의 위기 돌파를 위해 사장단 회의인 '밸류 크리에이션 미팅(VCM)'을 진행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석유화학과 식품, 유통 등 주요 사업 부문의 위기를 고려해 처음으로 1박2일 일정의 회의를 열고 임원들에게 경영 지표 개선이라는 과제를 내렸다. 브랜드 가치 제고, 생산성 향상 외 생존 전략을 추진해 위기를 돌파하라는 주문이다.
신 회장은 이날 "기업 경영에 있어서 치명적인 잘못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문제를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황 부진과 실적 악화로 시름하는 주요 사업 부문 임원들에게 강력한 쇄신 정책을 당부한 모습이다. 신 회장은 "경영 환경 변화를 예측해서 해야 할 일을 계획하라"며 "전략을 실행할 인재와 기술도 준비해달라"고도 말했다.
롯데그룹의 핵심 사업 영역은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 유통, 식품은 물론 건설을 비롯한 수많은 계열사가 생존 갈림길에서 휘청이는 가운데, 롯데지주로도 위기의 여파가 빠르게 번지는 모습이다. 특히 석유화학 사업을 추진하는 롯데케미칼의 부진이 뼈아프다. 롯데케미칼은 업황 악화로 수년간 수익성이 낮아지며 외부 차입에 의존했고, 지난해 말 연결기준 순차입금 규모가 7조1914억원으로 불어났다.
롯데그룹의 재무 부담이 커지자 기존에 추진하려던 신규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위기 상황인 만큼 신규 투자 재원과 여력 모두 없다는 평가다. 이번 사장단 회의에서도 신규 사업 대표격인 헬스케어 담당 임원은 자취를 감췄다. 일찍이 비상 경영을 선포하며 관련 사업을 추진한 롯데헬스케어를 청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롯데헬스케어는 롯데지주가 헬스케어 시장 진입을 위해 수백억원을 투입, 지원한 회사다.
롯데헬스케어는 출범 이후 사업 추진 속도도 빨랐다. 디지털 플랫폼을 출시하고 연계 사업을 확장하며 같은 시기 출범한 롯데바이오로직스보다 보폭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롯데그룹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지난해 상반기 내부적으로 헬스케어 사업을 정리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룹사의 재무 상황을 고려했을 때 헬스케어 부문에 투자를 이어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5~6월께 이미 헬스케어 사업을 철수하자는 지시를 받았다"라며 "비상 경영 상황에서 롯데지주가 먼저 '도려내기'를 해야 한다는 의중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투자를 계속 이어갈지에 대해서도 갈등이 있었다"라며 "롯데헬스케어가 올해까지 사업을 추진했다면, 마케팅 등에 200억~300억원 정도의 지원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롯데헬스케어의 법인 청산 결정을 두고 다소 성급한 결정이라는 평가도 내린다. 롯데헬스케어가 설립된 지 3년여 만에 청산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핵심 사업인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한 지는 고작 6개월 된 시점이었다. 롯데그룹이 지난해 중순 헬스케어 사업을 정리하기로 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사업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고 사업 중단 결정을 한 셈이다.
롯데그룹의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부문인 롯데바이오로직스에서도 성급함은 드러난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를 통해 이원직 전 대표 대신 제임스 박 신임 대표를 롯데바이오로직스 수장으로 선임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수주 성과를 올리는 데 애를 먹곤 있었지만, 이 전 대표가 롯데지주에서부터 바이오의약품 CDMO 사업을 준비해 왔던 만큼 의외의 인사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롯데그룹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과 계속되는 위기 상황은 신규 사업 부문에 소속된 임직원들의 이탈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특히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출범 초기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인력 이동과 영업 비밀 유출을 두고 법적으로 다퉈온 만큼 임직원들 사이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의견이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와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이동한 직원들이 이탈한 것으로 안다"라며 "그룹사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대내외적으로 여러 이슈가 겹친 점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냐"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