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기대감' 소멸 국면...관세 압박 속 실적 시즌도 개막
상법만큼 세법도 중요...세수 부족 정부ㆍ여당, '증세'로 일관
결국 기업 수익성이 핵심...관세 협상결과ㆍ영향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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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식시장에서는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데, 그보다는 애초에 주식시장의 기대가 너무 크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상법 개정은 단숨에 통과가 가능하지만 그 다음 일들은 쉽지 않은 법입니다." (이웅찬 아이엠증권 연구원)
연초 대비 35% 급등한 코스피 지수가 3200 고지에서 주춤한 모양새다. 잠깐의 휴식일 뿐 '코스피 5000'도 시간 문제라는 낙관론과, '상법 개정' 이상의 새로운 재료가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엇갈린다. 관세 압박 속 실적 시즌이 개막한 가운데, 기업들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기대치에 부합할 지 역시 변수로 꼽힌다.
코스피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34% 올랐다. 지난 4월 9일 연저점 기준 불과 104일 만에 40% 급등하며 22일 장중 3220 고지를 넘기도 했다. 2600선에서 3100까지 불과 15거래일만에 500포인트를 단숨에 뛰어오른 6월의 기세를 고려하면 2021년 6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 3316.08 재돌파도 가능해 보였지만, 7월 들어선 3100~3200선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코스피 재평가의 일등공신이었던 '정책 기대감'이 일정부분 소멸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6월 외국인과 함께 코스피를 밀어올린 개인의 집중 매수세는 지난 3일 상법 개정안 국회 통과 이후 2조5000억원 순매도로 돌아서며 전형적인 '셀 온 뉴스'(뉴스에 팔아라)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매물을 받아낸 건 외국인 투자자들이었다. 이들은 개정안 통과 이후 코스피에서만 2조9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연초 이후 4월 저점까지 14조원을 내다팔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6월 한달 간 달러인덱스가 100에서 96.4까지 떨어지는 등 달러 약세가 급격히 진행되며, 신흥국으로 향하던 자금 중 일부가 증시 선진화 정책을 추진하던 한국으로 쏠린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골드만삭스가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3500으로 12% 상향했고, JP모건은 코스피가 2년 내 500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코멘트를 내놨다"며 "글로벌 IB들이 잇따라 국내 증시 전망을 상향한 건 지금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이 계속 진행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상법 개정안이 증시 선진화 정책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증시 선진화 정책의 핵심은 '최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 일치'라는 게 복수 증시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를 위해선 세법 개정안 등 추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경영권 승계를 앞둔 기업은 상속ㆍ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진행 중인 세법 개정안은 이 같은 시장의 기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다. 기업들에게 상법 개정안이라는 '채찍'이 가해진 만큼 상속증여세 완화라는 '당근'도 함께 주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현 정부는 이를 '중장기 개편 과제'로 분류하고 논의를 뒤로 미뤘다. 오히려 지난 정부 시절 1%포인트 낮췄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다시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증권거래세도 이전 수준으로 원상 복구 시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를 시행하지 않기로 한만큼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연말마다 대규모 매물을 출회시켜 소액주주들의 원성을 샀던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역시 50억원에서 다시 10억원으로 낮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당 내부에서 '일부 부자만 감세 혜택을 받는다'며 '부자감세'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어서다.
세금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반(反) 증시에 가까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친(親) 증시적 정책으로 꼽히는 배당소득 분리과세의 경우에도, 액수 무관 동일세율 과세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다소 떨어진 수준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배당성향 35% 이상 상장사의 배당 한정, 배당소득 연 2000만원 이하인 경우 15.4% 세율을 적용하고 그 이상인 경우 3억원을 기준으로 각각 22%, 27.5%를 과세하는 안을 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여기에 배당증가율을 기준으로 추가하고, 고소득자는 세율 인하폭을 축소하자는 추가안을 제시한 상태다. 세수 확보에 더욱 무게를 둔 모양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상법과 세법 개정은 함께 가야 하는데 현 정부가 3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확장재정에 나서며 재정 적자 부담이 매우 커졌다"며 "지금 논리대로라면 상속증여세 인하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런 와중에 실적 대비 주가는 일정부분 천장에 다다른 것이 아니겠느냐는 신중론은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지난 9일 국내 4대 금융지주와 3대 지방금융지주, 기업은행, 카카오뱅크 등 커버리지 내 모든 은행주의 투자 의견을 보유(HOLD)로 하향 조정했다. 커버리지 전체 기업의 투자의견 하향은 국내 증권가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전체적인 실적은 기대치에 부합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상승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게 조정의 이유였다.
증권주 역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서로 상대방의 투자의견을 보유로 하향조정하며 '자존심 싸움 하는 것 아니냐'고 희화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의견이 하향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불과 두 달만에 3배 가까이 오르는 등 현 주가가 펀더멘탈 대비 충분히 올랐다는 판단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22일 실적을 발표한 HD현대일렉트릭의 어닝쇼크는 이번 상승장의 최대 수혜주였던 전력ㆍ방산ㆍ조선 테마주 투자자들의 경계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현대일렉트릭은 글로벌 빅테크발(發)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설의 핵심 수혜주로 꼽혔다. 다만 2분기 실적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예상평균치)를 각각 11%, 7% 밑돌았다. 이로 인해 실적 발표 당일 현대일렉트릭 주가는 장중 낙폭이 8% 이상 확대되기도 했다.
한 증권사 전략 담당 연구원은 "여기서 코스피가 4000으로 한 단계 더 레벨업 하려면 미국 및 가상화폐 시장으로 분산된 수요도 증시로 끌고 와야 하는데, 상법 개정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며 "결국 국내 기업의 수익성(EPS)이 성장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며, 이는 조만간 마무리될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그 파급 효과를 지켜보며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