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쓸 거니 최고급 자재만 써라"…눈물의 매각 후 10년, 페럼타워 되찾은 동국제강
입력 2025.07.29 07:00
    it의 경제학 [신사옥과 구조조정의 경제학]
    고단했던 구조조정 마무리 수순
    장세주 회장 애정 담긴 공간…이름부터 자재까지 직접 챙겨
    '더는 팔 게 없다'며 쓴 마지막 카드, 오랜 기다림 끝 제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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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페럼(Ferrum)은 라틴어로 철(鐵)을 뜻한다. 철강회사인 동국제강은 그 의미를 담아 사옥을 페럼타워(Ferrum Tower)로 명명했고, 2010년 준공한 이후, 한 동안은 을지로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로 여겨져왔다. 지금은 중심업무지구(CBD) 일대에 페럼타워와 비견할만한 초고층 프라임오피스들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위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지만, 여전히 인근 직장인들과 투자자들에겐 고급 오피스로 인식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사옥을 지을 당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우리가 직접 쓸 거니 자재는 최고급으로 써라”고 주문하며 설계부터 자재 선정까지 깊이 관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5년 유동성 위기의 파고를 넘던 동국제강은 페럼타워를 삼성그룹에 매각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다. 준공한지 불과 4년만의 일이다.

      철강 업황 악화와 대형 투자에 따른 재무 부담이 겹치면서 동국제강은 2014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유상증자 외에도 중국 법인과 브라질 제철소, 골프장(페럼인프라), 본사 사옥(페럼타워) 등을 매각하며 현금 확보에 나섰다. 

      특히 페럼타워는 준공된 지 불과 4년 된 신사옥이었고, 장 회장이 오랜 기간 매각을 반대해온 자산이라는 점에서, '더는 팔 것이 없다'는 절박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기업이 새 사옥을 올린 후 어려움을 겪는다는 '신사옥의 저주'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동국제강은 이후에도 본사를 이전하지 않고 페럼타워를 계속 사용해왔다. 삼성생명에 임대료를 지급하면서 명의만 바뀐 상태로 사옥의 기능과 의미는 그대로 유지됐다. 실질적으로 회사의 정체성의 여전히 그 공간에 머물러 있던 셈이다. 

      당시 매각가는 약 4200억원. 평당 2500만원 수준이다. 시장에선 이 건물이 5000억원 가까이 평가되던 만큼 '저가 수의계약'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별도 매각 주관사 없이 한 달여 만에 거래가 성사됐고, 삼성생명 고위층과 동국제강 측의 교감 속에서 이뤄진 거래라는 해석도 나왔다. 삼성그룹엔 CBD 지역에 안정적인 임차인이 확보된 프라임오피스 자산을 '싼 값'에 인수할 수 있는 거래이자, 동국제강은 속전속결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거래로 기록됐다. 

      그러부터 10년이 지난 2025년. 동국제강은 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페럼타워를 되찾았다.

      사옥을 되찾는데 투입한 자금은 총 6450억원이다. 지난 2025년 매각가 4200억원과 비교해 50%가 오른 가격이다. 동국제강은 삼성과 동국제강이 거래할 당시 계약조건에 포함된 콜옵션(Call-option, 매수청구권)을 활용해 매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CBD지역내 오피스 거래가격은 3.3제곱미터 당 약 3500~4000만원선이다. 호가는 4000만원을 넘기기도 하지만 GBD 지역과는 달리 4000만원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 광화문 인근에서 거래된 크레센도빌딩(연면적 약 5만4700㎡)의 거래가는 약 5600억원, 평당 3400만원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페럼타워는 비슷한 규모에도 평당 약 3800만원으로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는 점에서 “이미 연식이 있는 자산을 되찾기 위해 제 값 이상을 지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동국제강은 2016년 재무개선 약정을 조기 졸업한 뒤, 컬러강판 등 수익성 높은 제품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이 일정 부분 회복된 뒤엔 어려운 시기 매각했던 자산을 되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앞서 골프장 운영사 페럼인프라도 콜옵션을 설정해뒀고, 2018년 이를 행사해 회수한 바 있다.

      동국제강은 이번 인수 자금을 보유 현금과 외부 차입을 병행해 마련할 계획이다. 2024년 1분기 기준 보유 현금은 약 3761억원으로, 잔금 납부에는 외부 조달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회사채 신용등급이 없는 만큼 은행 차입이 유력하며, 최근 1000억원 규모의 여신 한도를 추가 확보해 총 2000억원가량의 차입 여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그룹 관계자는 “이번 사옥 매입은 10년에 걸친 구조 개편의 마침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