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중복상장 경계 속 대기업 계열사들 ‘눈치보기’
거래소 가이드라인 부재에 증권가도 관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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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플라즈마가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프레젠테이션(PT)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발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대기업 계열사 중복상장에 대한 금융당국 및 거래소의 부정적 기조 속에 발행사가 눈치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플라즈마는 지난 6월 23~27일 주관사 선정을 위한 증권사 PT를 마쳤다. 증권가에서는 7월 초 결과 발표를 예상했으나, 발표는 한 달 넘게 지연되고 있다. 발행사 측은 당시 증권사들에 “결정까지 한 달 정도 걸릴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로서는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SK플라즈마 측에서 '한달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했지만, 뉘앙스로 보면 '당장은 어렵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SK플라즈마의 주관사 선정 지연 배경에는 새 정부의 상장 정책 기조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적분할을 통해 우량주의 알맹이를 빼먹는 부당 거래가 허용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이후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한국거래소도 중복상장에 대해 보다 엄격한 심사 기조를 보이고 있다.
SK엔무브의 상장 철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는 지난 상장 추진 과정에서 현물배당 등 모회사 주주 보호방안 마련을 요구받았지만, 이해관계 조율에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기술성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오스코텍의 신약개발 자회사 제노스코의 상장 무산도 시사점이 크다. 제노스코는 처음부터 독립법인으로 출범했고, 전형적인 물적분할 방식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거래소는 모회사와 주력 파이프라인이 중복돼 상장 시 디스카운트 우려가 있다며 상장 미승인을 권고했다. 쪼개기 상장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승인이 난 이례적 사례로, 이후 기업들이 중복상장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 더욱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SK플라즈마 역시 섣불리 상장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SK플라즈마는 지난 2013년 SK케미칼에서 분할된 이후 독립적인 매출 구조를 갖춰왔지만, 물적분할 자회사로 분류되는 이상 중복상장 이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K플라즈마는 엔무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복상장 논란에서 비껴가 있는 편이지만, 현 정부의 기조상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특히 대기업 계열사인 만큼 상장 추진 자체가 시장과 정부를 상대로 도전적으로 비칠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SK플라즈마에 대해 "딜 난도가 높은 데다, 이미 경쟁도 치열하다"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빅딜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지만, 중복상장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섣불리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 증권가의 공통된 인식이다.
상장을 준비 중인 다른 대기업 계열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화에너지도 주관사를 선정했지만, 이후 실제 상장 준비는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중복상장 관련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만 기업들이 본격적인 IPO 추진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부의 중복상장에 대한 엄격한 기조가 명확해졌지만, 거래소 차원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계열사 IPO는 당분간 관망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