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중복상장 가능성 낮아지자…HD한국조선·HL만도 기업가치 재산정나선 증권가
입력 2025.07.31 07:00
    새정부 중복상장 규제에 IPO 대어는 줄었지만
    지분 희석 우려 줄어 모회사 가치산정엔 긍정적
    HD한국조선·HL만도 등 기업가치 재평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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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 정부 들어 중복상장이 사실상 막히게 됐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중복상장을 예의주시하면서 다수 대기업들이 상장 계획을 철회하거나 잠정 연기했다. 상장(IPO) 시장에서는 '대어'가 사라졌단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다소 상반된 분위기도 엿보인다. 모회사 입장에선 '자회사 중복상장'이라는 디스카운트 요인을 걷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가 일각에선 자회사 중복상장 리스크를 벗은 기업의 가치를 재산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복상장을 지적해왔다. 민주당은 중복상장 기업의 신주를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중복상장을 규제할 방침이다. 현재 국회에는 중복상장 규제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다.

      정책 당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상장을 고려하던 SK엔무브, 한화에너지 등 대기업 계열사들은 연이어 IPO계획을 유보했다. IPO시장에서 '빅딜'이 사라지자 거래소가 나서 상장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대형 IPO의 상장 수입이 줄어들게 생긴 증권사 입장에선 답답할 만한 상황이다.

      중복상장 금지 기조가 나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자회사 상장 가능성 때문에 눌려 있던 모회사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지주사들의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는 자회사들의 지분가치도 함께 평가해 반영한다. 증권사들은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밸류에이션에 할인율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복상장이 막히고 자회사가 상장할 가능성이 없으면 굳이 모회사 가치를 깎을 이유가 없다. 증권사들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이나 HL만도 등이 대표적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HD삼호중공업에 대해 96.65%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HD삼호중공업이 IPO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HD한국조선해양에 대한 밸류에이션을 매길 때, HD삼호중공업에 대한 지분가치를 할인 적용해왔다. 

      최근 분기부터 일부 증권사들은 HD삼호중공업의 상장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판단 아래 해당 지분가치에 대한 할인률을 줄여 적용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주가에는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한단 분석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주사의 경우 자회사 지분가치를 어느 정도 할인해 반영하는 것이 통상적"이라며 "중복상장 우려로 HD현대삼호의 지분가치를 40%~50% 정도 할인하는 등 다른 자회사들보다 더 큰폭으로 할인해왔지만, 사실상 중복상장 가능성이 막히며 할인율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지난 6월 HD한국조선해양에 대해 "상장 자회사 지분 가치가 연초 대비 56% 증가했고, 비상장 자회사인 HD현대삼호중공업의 가치도 더 크게 상승했을 것으로 평가된다"고 평가했다.

      HL만도도 자회사의 중복상장 이슈가 해소되며 밸류에이션이 재산정되는 분위기다.

      HL만도는 2021년 6월 자율주행 부문을 물적분할해 HL클레무브를 설립했고, 2021년 말 HL클레무브에 대한 IPO 가능성을 시사했다. 증권가에선 HL만도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HL클레무브 상장 시 HL만도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을 반영했다. 물적분할 직후 1.5배 수준이던 주가순자산비율(P/B)는 영업익 감소까지 겹치며 최근 0.7배 수준까지 하락했다.

      최근 HL만도는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HL클레무브의 상장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안 등 제도 변화로 IPO가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키움증권은 HL만도의 밸류에이션을 재산정했다. 신윤철 키움증권 연구원은 HL만도에 대한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HL클레무브 IPO 가능성이 HL만도의 주요 P/B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며 "사실상 IPO 철회 메시지를 전달한 바, HL만도의 밸류에이션은 과거 멀티플로 점진적으로 회복할 초석이 마련됐다"고 내다봤다. 

      다만 자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기업가치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았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애초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자회사 상장 가능성을 주요 변수로 반영하지 않아, 할인 적용도 제한적이었을 수 있단 것이다.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본질적인 수익성 개선이나 시장 점유율 확대 등 긍정적인 요인이 있어야 가치를 높이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