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막판 카드였던 '조선업'…HD현대·한화 美투자 방향에 쏠린 눈
입력 2025.07.31 13:20
    조선업 ‘막판 카드’로 관세 협상 견인…15%로 타결
    MASGA 프로젝트에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포함
    한화·HD현대·삼성重, 美 시장 진출 시나리오 모색
    미국 내 인력·기자재 부재는 부담…"장기 전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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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미 관세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 '조선업 협력' 카드가 관세 협상의 결정적 지렛대로 작용했다. 한국 정부가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펀드 조성을 공식화하며,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이 어떤 방식으로 미국 조선시장에 투자할지 시선이 쏠린다.

      31일 한국은 미국과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한국은 미국에 4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및 구매 약속을 했으며, 이 중 1500억 달러가 조선 협력 전용 펀드로 배정됐다. 관세 합의에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큰 기여를 했단 분석이다. 정부는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를 통해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등 한국 기업의 미국 조선업 진출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지원하고, 기업들은 미국 조선소 투자나 건조 협력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MASGA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 발의를 예고하기도 했다.

      법안에는 ▲한미 조선협력기금 조성 ▲한미 조선협력 협의체 설치 ▲인프라 구축 비용에 대한 한국 정부의 보증 및 투자 ▲투자 및 기금 지원 전제 중장기 MRO 물량 안정적 확보 담보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다만 기업 차원에서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나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보다 먼저 관세 협상을 마친 일본 또한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위해 2030년까지 1조엔(약 9조45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기업 차원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MASGA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체들의 수요에 기반해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조선 인력 양성 ▲미국 내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조선 관련 MRO(유지보수) 사업을 진행하는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회담 과정에서 미국 측은 한국의 조선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며, 자국 내 선박 건조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한국 기업들이 사업을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오션은 그간 미국 조선업 투자에 가장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왔다. 김동관 부회장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위해 출장길에 올라 대미 협상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데 이어, 호주 오스탈의 지분도 매입하고 있다. 아울러 한화해운이 필리십야드에 선박을 발주하고, 필리십야드가 한화오션에 하청을 맡겨 최종 마감 공정을 한국에서 지원하는 방식의 '미국산 선박 모델'도 제시한 상태다.

      HD현대 역시 미국과의 기술 협력에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의 헌팅턴 잉걸스, ECO 그룹과 협력을 맺었다. 군함과 상선 부문 모두에서 기술 협력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아직까지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선 기회를 보며 물밑 접촉을 이어가는 단계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최근 들어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 기조를 바꿨다. 최근 컨퍼런스콜을 통해 미국 현지 조선소와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체들과의 공동 건조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 기업 모두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 방향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미국 내 조선업을 재건하는 작업은 난이도가 높은 작업으로 평가된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기자재는 물론 숙련된 인력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사가 미국 조선소에 직접투자할 경우 부품 조달부터 인력 양성, 공정 관리까지 대부분의 과정을 사실상 도맡게 될 가능성도 있다. 고정비 비중이 높은 산업이라, 초기 진입에 따른 손실 리스크도 적지 않다.

      다만 산업계는 분명한 기회 요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조선 기자재 업체들에겐 미국 내 선박 건조 수요가 늘어나며 부품·소재 수출 통로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국내 조선 생태계는 조선 3사 외에 여러 기자재 협력사도 포함돼 있는 만큼, 미국 진출이 이뤄질 경우 연쇄적 수출 확대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한국 정부가 조선업에 자금 지원을 약속할 경우, 글로벌 해운사들이 국내 조선사가 투자한 현지 조선소에 발주할 유인이 커지며 보다 우호적인 수주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지 직접 투자를 통해 실제로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미국 조선소에 직접 투자할 경우, 기자재 수출 확대 방안 등 종합적인 계획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