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발행량 최대치…순발행도 급증
은행 대출도 늘어…'회사채+론' 병행
불확실성·미매각 우려에…은행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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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준금리 인하로 회사채 시장 금리가 하락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한층 개선됐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은행 대출을 병행하는 조달 전략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가 낮아졌더라도 차환 불확실성과 유동성 확보 수요가 맞물리며, 회사채와 은행 대출을 병행하는 구조가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회사채 발행 규모는 약 75조3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조3000억 원) 대비 15% 가까이 늘며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기관투자자들의 수요예측 참여 규모도 163조 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금리 측면에서도 조달 여건은 우호적이다. 신용등급 AA- 기준 3년물 회사채 금리는 올해 1월 3.2% 수준에서 6월 말 2.94%까지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국고채 3년물 대비 신용스프레드는 68bp에서 49bp로 축소되며, 금리 측면에서 기업의 발행 부담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은행 대출 대비 회사채 발행 여건이 크게 개선됐지만, 대기업들은 여전히 은행 대출을 병행하며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상반기에만 5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약 9조 원가량 늘었다. 전체 여신 가운데 약 90%가 대기업에 집중됐다. 그만큼 대기업들의 은행 조달 필요성이 컸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반기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이 약 10조 가까이 늘었는데, 그 중 9조원 가까운 대출이 대기업 대출이었다"라며 "기업들의 대출 수요는 이보다 훨씬 컸지만,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때문에 모든 수요를 받아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들의 조달 전략은 단순 기존 채무를 차환하는 것을 넘어 유동성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상반기 회사채 전체 발행량 가운데 차환용 물량을 제외한 순발행 규모는 약 19조8123억원으로, 11조원 수준에 그쳤던 지난해 대비 약 80% 가까이 증가했다. 발행 증가 자체가 단순 차환 목적을 넘어 추가 유동성을 염두에 둔 전략적 발행이란 분석이다.
SK나 롯데 등 자금 수요가 큰 대기업들도 회사채 발행과 은행 대출을 병행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령 롯데그룹은 상반기 그룹 전체의 회사채 만기 도래액이 약 3조4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신규 발행은 1조7650억원 수준에 그쳤다. 잔액은 기존 보유 현금과 은행 대출을 활용해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기업금융 부문 관계자는 "대기업 대부분이 회사채를 발행해도 100% 전액을 차환에만 쓰지 않고, 최근엔 전체 발행액 중 30~40%는 은행 대출로 돌리려는 경향이 짙다"라며 "회사채는 일단 찍으면 만기 시점에 다시 발행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미매각 가능성이나 금리 변동성 등 변수가 존재하지만 은행 대출은 웬만하면 만기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전략은 수요예측 시장의 불확실성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공모채 시장이 전반적으로 호조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모든 기업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롯데건설(A0)과 CJ CGV(A-) 등이 모집한 회사채는 전량 미매각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발행 규모가 크거나 시장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경우 수요예측에서 미매각 우려가 불거지거나, 금리 조건이 당초 계획보다 불리하게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AA- 이하 등급이나 중단기물 위주의 조달에서는 기관의 응찰 강도가 기대치를 밑도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IB 관계자는 "공모채 시장이 뜨겁다고는 하지만 수요예측 결과는 발행 시점, 시장 분위기에 따라 편차가 크다"라며 "기업 입장에선 금리 수준만 보고 회사채만 믿고 가기보다, 만기 대응과 자금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은행 대출을 병행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