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담 커진 롯데건설, 국책사업 통한 현금 확보?
정치권은 '부산 기업' 프레임으로 참여 기대감 높여
난도 있는 사업, 수익성 낮고 예산도 대폭 삭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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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신공항 사업자 명단에 롯데건설 이름이 등장했다. 현대건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빠진 자리에 조용히 들어섰다. 주무부처와 롯데건설 모두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업계와 정치권에선 사실상 롯데가 주도 사업자 대열에 합류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현대건설이 빠져나간 자리를 누군가는 메워야 했고, 지역 내 영향력이나 정치권 기대감을 감안하면 "결국 롯데뿐 아니겠냐"는 관측이 시장 곳곳에 퍼지고 있다.
정작 가덕도신공항 사업 구조만 놓고 보면 민간사 입장에선 매력이 크지 않다. 13조원 규모의 초대형 국책 프로젝트이긴 하나, 정해진 공기·예산·기술조건 모두 빡빡하고 수익성은 불투명하다. 여기에 공사 자체가 가진 난도가 높다. 이 때문에 현대건설도 사업 포기를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국토부 역시 사업 추진 의지가 크게 강하지 않은 듯, 문제점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길이 3500m에 달하는 활주로를 해수면으로부터 30m 정도 되는 높이에 세워야 하니 물리적·기술적 난관이 적지 않다"며 "간사이 국제공항처럼 매립지 침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건설이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산시 지역기업이라는 명분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롯데건설이 처한 재무 상황을 들여다보면 맥락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복수 신용평가회사 분석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순차입금은 2023년 말 8754억원에서 2025년 1분기 1조7500억원까지 두 배 이상 늘었다. 부채비율은 211%, 차입금의존도는 28%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단기 유동성이 빠듯하다. 현금성 자산과 한도성 대출을 모두 합쳐도 1조3500억원 정도인데, 1년 내 만기 PF 차환 부담만 6400억원을 넘는다. 여기에 투자·운전자금 등 기타 자금 수요를 감안하면 유동 여유는 크지 않다.
사업성 측면에서도 매출채권은 늘고 분양은 지연되고 있다. 특히 도급사업 중 지방 비중이 60% 이상으로, 수분양률도 상대적으로 낮다. 영업현금 창출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PF 우발채무도 3조6000억원인데, 이중 2조원 이상이 미착공 현장이다. 실제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이런 구조에서 가덕도신공항은 단기 유동성 확보의 출구처럼 보인다. 공사 초입에 컨소시엄에 지급될 선수금은 1조원 안팎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2달 내 외주비로 바로 빠져 나가더라도 단기 유동성 완화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
롯데건설 측은 선수금에 기댈 만큼 유동성이 급하다면 당장 은행 대출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그리 열려있지 않다. 이미 시중은행들로부터 금리를 약 4%p 낮춘 조건으로 조단위 리파이낸싱을 지원받은 상황이라 추가적인 대출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롯데그룹이 지분을 보유한 BNK금융도 대주주 신용공여 한도 탓에 적극적인 추가 지원에 나서기 어렵다. 최근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된 점도 자금 조달 비용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맥락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다. 부울경(PK) 표심이 내년 지방선거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가운데, 여야 모두 "가덕도공항은 반드시 속도를 내야 한다"는 말은 하지만 정작 지갑은 닫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 6월 기획재정부의 예산 삭감이다. 가덕도 예산은 추경 재원 마련을 이유로 절반 가까이 잘려 나갔다.
야당의 '부산 홀대론'과 여당의 '시정 책임론'이 맞서는 가운데, 부산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롯데는 부산 기업 아니냐"는 프레임을 앞세워 참여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엔 롯데그룹이 반여물류단지(옛 반여동 농산물시장 부지) 개발을 수년째 지연해온 점도 작용했다. 지역구 내선 "가덕도까지 또 빠지면 민심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이 반복된다. 롯데 입장에선 수익성보다 체면과 여론 리스크가 우선 고려돼야 하는 구도다.
롯데건설의 재무 구조만 보면 공사 참여의 실익은 분명히 있다. 가덕도신공항 사업 초기에 잡힌 1조원 안팎의 선수금은 일시적으로라도 단기 유동성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규모다. 아직 컨소시엄이 확정되지 않아 참여 기업들이 가져가는 선수금 규모도 달라질 수 있지만,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롯데건설 측은 "선수금이 곧 외주비로 빠져나간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업계에선 "급한 불 끄기엔 이만한 소화기도 없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국책사업인 만큼 대금 집행도 안정적인 편이라 민간 도급보다 현금 흐름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낮다.
결국 가덕도신공항은 민간 기업의 경영 판단보다는 정치 명분과 지역 여론이 우선 작용하는 프로젝트가 됐다. 사업 예산 삭감으로 실질 추진 의지가 약화된 가운데, 정치권은 여전히 조기 착공을 외치고 있고 지역 주민들은 부산 기업의 참여라는 명분을 강조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입찰 참여를 내부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유동성 현실과 정무적 압박 사이에서 사실상 선택지가 좁아진 상황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