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등 이슈로 인수 과정 순조롭진 않은 듯
인수한다 해도 킥스 비율 저하 불가피
안정까지는 시간 걸려...주주환원에도 영향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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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손해보험의 미국 보험사 인수 추진을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실제 거래가 성사된다면 조 단위 자본이 투입되며 킥스(K-ICS)비율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는 곧 주주환원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관 주주들도 거래의 추이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DB손보는 1분기 미국 산불 등으로 해외 보험사업에서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국내 1위 삼성화재조차 지분투자로 조심스럽게 해외 진출을 타진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경영권 인수에 나선 것을 두고 '오너 일가'의 자존심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평가도 나온다.
1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DB손해보험은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 기반의 자동차보험 특수 보험사 '포르테그라'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DB손보는 해당 보험사의 지분 100%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 매각 가격은 약 2조원으로 거론된다. 포르테그라 매각주관은 모건스탠리가 맡고 있다.
현재 인수 가격 및 조건을 두고 협의가 지속되고 있으나, 거래 성사까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초에는 DB손보가 인수를 포기한 듯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으나, 현 시점에서는 다시 협의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DB손보 역시 지난달 31일 "최근 실사 후 협의 단계로 인수 여부, 가격 및 기한 등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재공시하기도 했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인수 협상을 벌이고는 있으나 가격 등의 문제 등에서 조율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포르테그라는 연초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도 했다. 때문에 매각 협상에 진척이 없다면 다시 IPO 절차에 돌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포르테그라의 모회사는 미국의 투자지주회사인 팁트리홀딩스다.
DB손보가 미국 현지 보험사 인수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매각 가격이 시장의 추정대로 2조원 규모에서 결정되면 국내 보험사가 진행한 해외 인수합병(M&A) 중 가장 큰 규모가 된다.
보험업계에선 DB손보가 이번 M&A를 통해 아쉬운 국내 실적을 만회하고자, 해외 확장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오랜 기간 손보업계 2위를 지켰던 DB손보는 최근 메리츠화재와의 순익 싸움에서 종종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DB손보는 베트남 보험시장 진출을 통해 일정부분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DB손보는 지난해 베트남 국가항공보험(VNI)과 사이공하노이보험(BSH) 등 두 개 보험사 지분을 인수했다. 2015년 최대주주에 오른 우정통신보험(PTI)을 포함, 베트남 10대 손보사 중 세 곳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해외사업부문에서 380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메리츠화재는 인도네시아 법인 한 곳 외에는 딱히 해외 진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DB손보가 메리츠화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사업부문으로 해외사업을 점찍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포르테그라의 지난해 말 기준 자산 규모는 54억달러(약 7조5000억원), 연간 순이익은 1억5700만달러(약 2200억원)이다. 인수에 성공할 경우 해외사업부문이 지금보다 수 배 이상 커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인수 후 건전성은 즉각 흔들리는 반면 수익성은 최소 10년을 봐야 할 텐데 보통의 회사라면 엄두를 못 낼 결정"이라며 "이대로라면 업계 2위를 영영 뺏길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DB손보는 안정을 추구하는 회사로 인식되는데, 과감한 결정엔 오너십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DB손보는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5.94%)과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9.01%), 김주원 DB그룹 부회장(3.15%)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오너 소유 보험사다. DB손보는 그룹 전체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선 김주원 부회장 역할에 주목한다. DB그룹의 해외 부문은 김주원 부회장이 총괄하고 있는데 김 부회장은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의 누나다. 일각에선 이처럼 전례 없는 대규모 M&A가 김주원 부회장의 색깔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사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진 DB손보가 상당한 출혈을 감내해야 할 것이란 예상이다.
DB손보는 최근 수 년간 미국 사업에서 고전해왔다. 지난 1분기 해외 원보험 부문에서 마이너스(-)376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LA에서 발생한 산불 영향으로 분석된다. 괌 태풍과 하와이 산불이 극심했던 2023년엔 6622억원의 연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M&A가 이뤄진다면 당장 건전성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1분기 기준 킥스 비율은 204%로 규제 기준(130%) 대비 안정적인 수준이지만, 인수를 위해 현금성 자산을 투입할 경우 킥스 비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1분기 말 기준 DB손보가 보유 중인 현금성 자산은 약 1조5000억원이다.
앞서 지난 3월 발표한 기업가치제고계획에서 DB손보는 킥스 비율 기준선을 200~220%로 제시했다. 220% 이상일 시 주주환원과 신규 사업 진출에 자본여력을 활용하고, 200%를 하회하면 적극적으로 가용자본을 확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2조원 규조 M&A를 단행할 경우 두 자릿수 규모의 킥스 비율 감소는 불가피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DB손보가 최근 기본자본 신종자본증권에 관심을 보인 게 이번 인수 계획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DB손보는 최근 4000억원 규모의 기본자본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해 주관사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기본자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보험사는 한 곳도 없다. 배당가능이익이 있는 보험사만 발행을 시도할 수 있는데, 스텝업 조항이 없기 때문에 기존보다 높은 금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 킥스 비율 제고를 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포르테그라는 업력이 50년을 넘은 중견 보험사로 영국과 유럽에 안정적인 영업망을 가지고 있어 해외사업 영역을 선진국으로 일거에 넓힐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면서도 "DB손보가 이를 관리할 역량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인데다 인수금융을 활용한다 해도 2조원 가량의 자금을 투입한 뒤에도 자본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