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유일 역성장…중소기업 대출 크게 줄여
RWA 제도 개편 앞두고 커지는 '기업여신 확대' 압박
순이익마저 감소…포트폴리오 전반 조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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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의 하반기 영업 전략 수립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당국이 RWA 제도 개선에 나서면서, 상반기처럼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에 의존한 수익 방어 전략을 이어가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기업대출이 역성장한 은행이었다. 위험가중자산(RWA) 관리를 통해 보통자본(CET1)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덕분에 우리금융은 지난해 목표치로 제시했던 CET1 비율 12.5%를 상반기만에 조기 달성했지만, 당장 전략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대비 3.61% 감소한 179조원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대출은 5000억원가량 소폭 늘었지만, 중소기업 대출이 7조3000억원 이상 줄어들면서 전체 대출이 역성장했다. 4대 시중은행 가운데 기업대출 잔액이 감소한 곳은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은 대기업 대출과 중소기업 대출을 각각 6.6%, 2.3% 늘리며 가장 높은 기업대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국민은행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을 고루 늘리며 약 2.5% 성장했다. 신한은행은 대기업 대출을 줄였지만, 그만큼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며 작년 말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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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선 우리은행이 보수적인 RWA 관리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기업여신을 조절한 것으로 본다. 4대 금융지주 중 CET1 비율이 가장 낮은 우리금융은 중소기업 대출 등 고위험자산을 줄여 자본비율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상반기 CET1 비율은 12.76%로, 연말까지의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한 시중은행 기업영업 담당자는 "상반기에는 은행들이 대기업 중심으로 기업대출을 확대하며 수익성을 방어한 반면, 우리은행만 RWA 관리를 위해 대출을 줄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하반기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RWA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면서, 기존의 전략을 유지하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현재 가계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는 상향하고, 기업대출과 정책금융 출자 등에 대한 가중치는 낮추는 방향의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다. 벤처 산업 육성을 위해 현행 400%인 벤처기업 투자 위험가중치를 일반 주식(250%) 보다도 훨씬 낮은 100%로 낮추는 등의 규제 완화 조치 등이 언급된다.
이르면 오는 8월 말 관련 안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자본비율 관리 측면에서도 유리해지는 만큼, 시중은행들은 하반기 기업여신 확대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주력이던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서도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확장 여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상반기에는 가계대출, 그중에서도 주택담보대출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일부 방어할 수 있었지만, 당국의 규제 기조가 강화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형국이다. 주담대에 대한 RWA 비중이 높아지면, 동일한 규모의 대출을 늘려도 자본 부담이 커져 기존 전략의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상반기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순이익이 줄어든 점도 부담이다. 우리은행은 상반기 작년 대비 7.6% 감소한 1조551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단순히 기업여신 확대에만 치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체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내부적으로 전략 수립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이 공통적으로 하반기 기업여신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은행은 자본관리, 시장 경쟁, 수익성 등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며 "특히 시간이 더 늦어지면 우량 차주 확보에서도 밀릴 수 있어, 빠른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