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이사회 리스크에 움츠러든 PEF
하소연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 여당 주도로 기업 규제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잇따라 통과하거나 상정되면서, 재계 전반이 긴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PEF(사모펀드) 업계는 드러내놓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속앓이’만 이어가고 있다.
총수나 대변 단체를 통해 정부와 소통 가능한 대기업들과 달리, PEF는 정식 창구도 부족한 상황이다. 노동계에선 구조조정의 주체로, 대기업에선 ‘경영권 위협자’로 여겨지는 이중의 시선 속에서 고립된 처지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대기업 중심 구조 개편과 구조조정의 최전선에 있는 PEF 역할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에서 ▲방송 3법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등 여야 간 주요 쟁점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중 기업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법안은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원청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등 합법적 노동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사용자 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요건 확대(1인→2인 이상)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들 법안에 대해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31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노란봉투법 개정안이 현실화될 경우 과격한 쟁의행위가 잦아지고, 산업 생태계와 고용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PEF 업계는 노란봉투법과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이해당사자 중 하나다. 하지만 사모펀드협의회 등 단체가 존재하긴 해도 영향력이 제한적이고, PEF 자체도 공적 활동에 신중한 성격 탓에 공론장에서의 발언이 거의 없다.
최근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PEF는 실질적인 ‘구조조정의 수요자’ 역할을 해왔다. SK그룹은 최근 1년간 80여 개 계열사를 정리했는데, 상당수를 PEF가 인수했다. 롯데그룹도 롯데렌탈 등 주요 자회사를 PEF에 매각했고, 중견기업이나 오너기업도 상속세 마련 등을 위해 PEF에 지분을 넘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 중심 구조 개편과 PEF 활동은 맞물려 있음에도, 정작 제도는 PEF의 활동 여지를 점점 좁히는 양상이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PEF가 인수한 기업이 겪게 될 노조 대응 리스크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 사모펀드는 보통 5년 내외의 투자·회수 사이클을 가지는데, 이 기간 중 파업이나 노사 분쟁으로 사업이 중단될 경우, IRR(내부수익률)에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한 PEF 관계자는 “대기업은 해외 이전이나 포트폴리오 조정 등 전략적 옵션을 고려할 수 있지만, PEF는 단기간 회수가 목표이기 때문에 노조 리스크를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홈플러스 사례만 봐도, 노조와의 협상이 얼마나 딜의 성패를 좌우하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법 개정에 따른 리스크도 PEF에겐 만만치 않다. 그간 PEF는 경영권을 행사할 때 전문 CEO를 영입하고, 자신들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 법적 책임에서 거리를 둬왔다. 하지만 상법 개정으로 인해 이사회 멤버 전원에게 ‘충실의무’가 명시되면서 법적 책임의 사각지대가 사라졌고, 이로 인해 PEF는 사실상 경영 책임자로서의 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사회 멤버로만 참여해도 경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인수 자체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PEF는 ‘재벌 저격수’도, ‘구조조정 저승사자’도 아닌, 제도 변화의 사각지대에서 투자 전략을 조율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시장의 실질적 수요자이자, 대기업의 리스크 매각을 수용하는 최종 투자자로서 PEF의 역할은 경제 구조 개편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에서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한국의 지배구조 개편이 이사회 중심으로 바뀌려면, 주주권 강화뿐 아니라 매각·회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병행되어야 한다”며 “PEF가 보유한 기업의 IPO(기업공개)가 용이해지도록 하는 정책도 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