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SK·태광 이어 다수 기업 EB 발행 논의
"지금 아니면 기회 없다"는 위기감 크단 평가
메자닌 투자 하우스들도 '막차' 수요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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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를 발행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현금 확보를 위해 서둘러 자사주를 활용하려는 흐름이다. 지난 5월 선거 시즌까지만 해도 '새로 들어설 정부에 밉보이면 안된다'는 경계감에 자제하려는 모습이 많았지만, 이제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로 생각이 바뀌며 막판 발행 타진이 급증하는 모양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들이 증권사·사모펀드(PEF) 등과 EB·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 등 자사주 활용 방안을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기 전 자금을 마련해두려는 전략이다. 정부 정책 기조와는 다소 엇박자를 내는 움직임이지만, 기업들로선 규제 시행 전 '현금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자사주 담보 EB 발행 수요가 확실히 늘었다. 예전엔 전체 EB 발행 중 자사주 기반이 10%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20%까지 올라왔다고 체감한다"며 "정권 기조보다 자사주 소각이 현실화되기 전 EB를 발행하겠다는 심리가 우세하다. 블록딜 사전공시제도 직전 대규모 물량이 나왔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사주 보유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라며 자사주 원칙적 소각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지난달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하반기 중 보완 입법이 검토될 예정이다.
지난달에만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세 건 발의됐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김현정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각각 1년, 6개월, 신규 취득은 즉시·기존 보유 자사주는 6개월 이내 등 자사주 소각 기한을 명시하고 있다.
자사주 기반 EB 발행 검토로 2대 주주와 마찰을 빚다 가처분 소송까지 당한 태광산업 사례는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자사주 약 27만 주(지분율 24.41%)를 기초로 3186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하겠다고 공시했으나,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달 1일 기존 주주 가치가 심각하게 희석된다며 두 번째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바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태광산업의 경우 2021년부터 2대 주주 트러스톤과 잦은 마찰을 빚어왔다"며 "EB 발행 반대 역시 이런 마찰의 연장선으로, 기존에 기관 주주들을 잘 관리해 '공론화' 소지가 없는 기업의 경우 EB 발행에 큰 부담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 들어서만 유가증권시장에서 LS(650억원), SNT다이내믹스(1100억원), SKC(2600억원), SK이노베이션(3767억원) 등이 대규모 자사주 기반 EB 발행에 성공했다. 선발 주자들의 발행 성공이 다른 기업의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모펀드(PEF)들의 수요도 이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메자닌 투자를 주 전략으로 삼아온 하우스들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고 있는데, 대기업 자사주 기반 EB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상품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들어 IMM크레딧앤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과 SNT다이내믹스의 EB를 매수했고, 한국투자PE와 헬리오스PE는 SKC의 EB를 사들였다.
한 PEF 관계자는 "자사주 기반 EB는 주가만 안정되면 손실 위험이 적고, 수익률도 일정 부분 확보된다"며 "최근엔 10~15% 수준이었던 할증률이 수요 경쟁으로 더 높은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