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여전사 물색 후 사모채 찍기도
여전사·발행사·주관사 윈윈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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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저축은행과 캐피탈사가 기업들의 사모 회사채 투자자로 적극 나서고 있다. 핵심 투자처였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딜이 감소하자 대체 투자처를 찾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사가 저축은행 등을 '전주(錢主)'로 확보한 다음 사모채 발행을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매년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정기적으로 공모채를 발행해 온 회사다. 지난 4월 2년물 200억원, 3년물 300억원 등 총 500억원 규모로 공모채 조달을 마친 바 있다.
하반기 들어서는 6월 2년물 100억원, 7월 2년물 300억원 등 사모채를 두차례에 걸쳐 찍었다. 여전사들의 사모채 투자 수요가 조달 방식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표면금리는 5.712%, 5.6% 수준으로 작년 공모채 발행 금리 수준(6.3%대)보다 낮았다.
KB증권이 저축은행 등을 투자자로 확보한 뒤 사모채를 찍을 생각이 없냐며 한토신에 먼저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토신은 지난 2021년 이후로 KB증권에 줄곧 공모채 주관 업무를 맡겨왔다.
교보자산신탁도 지난 6월 총 700억원 규모 사모채를 발행했다. 표면금리는 각각 6.0%, 6.3%로, 다올투자증권이 주관했다. 이 외에 한진칼이 사모채(500억원·4.35%), 에코비트가 사모 신종자본증권(850억원·4.8%)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투자자들은 대부분 저축은행과 캐피탈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들은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PF 대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금리 하락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신규 거래가 줄어들면서 대체 투자처로 사모 회사채 시장에도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저축은행 입장에선 요즘 귀해진 5%대 금리의 투자처를 확보할 수 있다. 증권사는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고, 발행사는 공모로 회사채를 발행할 때보다 부담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발행 금리가 더 낮은 경우도 있다. 여러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저축은행이 직접 발행사에 연락해 총액 인수를 할 테니 사모채를 찍을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었다"며 "올해는 증권사가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등을 미리 확보한 뒤 증권사를 통해 발행 요청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공모채 발행보다 증권사가 제시한 금리 수준이 더 낮은데다 부대 비용도 적고, 미리 투자자가 확정돼 있어서 사모로 조달할 유인이 충분했다"며 "증권사와 계약서 날인 과정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수월한 부분도 있었다"고 답했다.
당분간 이런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오는 9월 예금자보호 한도가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이후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자금이 일부 흘러들면 회사채 투자 여력도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증권사 부채자본시장(DCM) 본부장은 "금리 하락이 이어지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기대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사모 발행을 제안하고 있다"며 "건설, 화학 등 업종별 이슈가 있는 기업이거나 투자처를 찾는 캐피탈, 저축은행들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