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방침 200% 무너진 뒤 ‘절대 방어선’ 재조정
삼성생명마저 흔들리자 보험업계 전반 규제 부담 여실
할인율 속도 조절에도 ALM 강화·기본자본 규제 전환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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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이 후순위채 발행을 검토한 정황이 알려지며, 연초부터 수면 아래 이어져온 자본확충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발행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외부 조달에 나설 가능성을 유심히 지켜보는 분위기다.
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최근 후순위채 등 자본성 증권 발행 여부를 두고 조건과 효과 등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킥스(K-ICS)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발행 여부를 실무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다. 검토 결과 당장 실제 조달엔 나서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후순위채 발행 검토 및 외부 조달 가능성에 대해 삼성생명측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발행 계획이 없음에도 시장의 관심은 여전하다. 삼성생명은 지금까지 외부 자금 조달 없이 자체 자본만으로 자본적정성을 유지해 온 대표적 보험사다. 업계 최상위 수준의 자본력을 지속해온 만큼, 만약 삼성생명이 자본성 증권 발행에 나설 경우 단숨에 ‘빅딜’로 부각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핵심 쟁점은 ‘킥스비율 하락 방어’다. 삼성생명의 킥스비율은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200% 아래로 내려간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177.2%까지 떨어졌다. 삼성생명은 지난 5월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연말까지 킥스비율 180% 수준 유지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1분기부터 목표치를 밑돌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킥스비율의 규제 최소 기준이 130% 수준인 만큼 자본적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내부 목표로 삼아왔다. 과거에는 200% 선을 방어선으로 삼았고, 현재 목표치로 밝힌 180% 역시 업계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다.
삼성생명이 이처럼 높은 자본비율을 고수해온 데는 지배구조상 특수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지분을 다량 보유한 삼성생명은 그룹 차원에서 안정적이고 조용한 운용을 요구받는 위치다. 단순히 보험 영업을 넘어, 그룹 내에서 구조적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자본 여력을 확보해두는 것이 내부 기조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여유자본은 단순한 자본적정성 관리 차원이 아니라 그룹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며 “킥스비율 하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경우, 자본확충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생명은 그간 자본성 증권 발행에 다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조달 가능성 자체에 선을 긋는 분위기였지만, 올해 열린 2025년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자본성 증권 발행에 대한 근거 조항을 정관에 새로 신설했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조차 자본 조달을 둘러싼 고민에 나선 만큼, 보험업계 전반의 자본 관리 부담이 한층 커졌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생명을 포함한 생명보험 ‘빅3’인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의 킥스비율은 각각 145.8%(경과조치 적용 전), 154.1%로, 전년 동기 대비 30%포인트(p), 19%p 하락했다. 경과조치를 적용한 19개 보험사의 평균 킥스비율도 3월 말 197.9%로 떨어지며, 처음으로 200%선 아래로 내려갔다. 동양생명 등 일부 보험사는 금융당국이 완화한 권고 기준인 13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의 보수적 규제 기조에 따른 후폭풍을 앓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해지율 가정치를 보수적으로 조정한 무·저해지 환급형 상품 가이드라인과 2023년 발표한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방안, 여기에 구조적으로 늘어나도록 설계된 해약환급금 준비금 제도 등이 자본 관리를 점차 압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준금리 인하 기조도 킥스비율 하락 압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보험사의 부채는 늘어나고, 가용자본은 줄어들어 킥스비율이 하락하는 구조다. 지난 2월 금리 조정 이후 국내 보험사들의 1분기 킥스비율은 전 분기 대비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5월에도 추가로 기준금리를 0.25%p 내렸다. 현재 기준금리는 2.50%이다
이 같은 부담이 가중되자 금융당국도 최근 입장을 일부 선회했다. 보험사의 건전성 관리 부담을 고려해 부채 할인율 현실화 속도를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당초 2027년까지 단계적 확대를 예정했던 최종관찰만기 30년 적용 시점 역시 유예 또는 연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일시적인 숨 고르기에 그칠 수 있다고 본다. 중장기적으로는 킥스비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할인율 현실화는 이미 정해진 정책 방향이며, 기준금리 역시 추가 인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당분간 낮은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고, 시장에선 이르면 8월 추가 인하가 단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할인율 현실화 계획 등에서 속도 조절에 나서며 단기 부담은 일부 덜었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질적 관리 측면에서 자본 운용이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국은 할인율 적용 기준을 늦추는 대신 보험사들의 자산-부채관리(ALM)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본자본 킥스비율 도입 논의도 병행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관련 논의를 거쳐 오는 8월 중 구체적인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발표 내용에 따라 보험사 자본관리 환경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업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