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벤처 투자, 위험계수 낮춰 유도? 벌써부터 兆 단위 '강매' 우려
입력 2025.08.12 07:00
    100조원 정책펀드, 보험사까지 압박
    주요 보험사들 조 단위 출자 가능성
    위험계수 낮춰도 건전성 악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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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에 대한 압박을 보험업권까지 확대하면서 보험사가 '조 단위' 투자에 동원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100조원 이상 규모의 정책 펀드를 조성하고자 속도를 내면서 거액의 자산을 운용하는 보험업권도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정책펀드 등에 투자할 경우 위험계수를 경감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업계에선 사실상 강제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금리 인하와 업황 악화로 자본 건전성 관리가 어려워진 탓에 벤처 기업 등에 대한 투자는 지금까지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곳이 많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각 보험사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첨단산업 관련 정책 펀드 출자 규모 등을 검토 중이다. 대형 보험사의 경우 수천억원을 투자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첨단·벤처·혁신기업 투자를 위한 민관합동 100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중 50조원은 산업은행에 설치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을 통해 마련한다. 산은 자체 재원과 정부 보증 기금채 발행, 연기금 등의 출연 등으로 채운다. 나머지 절반은 금융권과 일반 국민의 투자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은행과 보험사가 대부분을 짊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업계에서는 시중은행의 경우 은행당 각각 1~2조원의 투자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본다. 보험업권도 3대 생보사와 5대 손보사를 중심으로 수백억~수천억원을 출자해, 총 수조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추정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 계획대로라면 금융권에서 50조원을 거의 다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니 보험업계도 회사별로 수천억원은 해야 하는 게 아닐지 고민 중"이라며 "은행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대략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라도 내놔야 하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특히 자본 건전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책 펀드 등에 투자 시 국채보다 준비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감독규정에 따라 국채 위험계수는 0%고, 주식은 20~49%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 관련 위험계수를 사회기반시설(SOC)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채에 비하면 여전히 준비금 부담이 크다. SOC 위험계수는 유효만기와 신용등급 등에 따라 0.7~4.2%로 부여된다.

      정부가 예외 조항 등을 통해 준비금 부담을 줄여준다 해도, 듀레이션 관리 부담은 남는다. 만기가 없는 주식으로 금리 위험을 관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보험업계의 평가다. 게다가 첨단산업 펀드가 진행할 벤처 투자 경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자산이라는 점에서 장기 부채가 많은 보험사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높은 금리 민감도나 낮은 수익성 등 국채 투자의 단점이 명확함에도 보험사 대다수가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건 준비금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며 "요구자본이 증가하면 킥스 비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보험사가 현재로서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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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보험업권의 전체 운용 자산은 1200조원 수준이다. 투자처는 대부분 국채로 만기가 길고 안정적 수익률을 보이는 상품을 선호한다. 이중 일부를 첨단·벤처·혁신기업 등을 위한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금융기관은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4일 뒤인 7월28일 금융협회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금융이 자금의 물꼬를 AI 등 미래 첨단산업과 벤처기업, 자본시장 및 지방·소상공인 등 생산적이고 새로운 영역으로 돌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권은 민관합동 100조 펀드 조성에 협력하는 한편, 자본건전성을 강화해 나가면서 생산적인 국내 장기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했다.

      문제는 보험사의 자본 건전성이 악화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보험사의 평균 지급여력(킥스)비율은 1분기 말 197.9%로 전분기 말(206.7%) 대비 8.7%포인트 하락했다. 보험사 평균 킥스비율이 200% 밑으로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 민자 SOC 투자나 행안펀드 참여를 독려하겠다며 위험계수를 경감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반강제적으로 출자하게 됐다"며 "지금은 보험업권 전반이 건전성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킥스 비율 규제 완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펀드 만기를 20년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 기간 생존하는 벤처 기업이 몇이나 될까 싶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가 조성 중인 정책 펀드는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정부와 국책은행 등이 참여하는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은 5년간 반도체(17조원)와 배터리·바이오(34조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해당 자금을 통해 한국의 중소벤처기업을 엔비디아, TSMC 같은 '헥토콘'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첨단 산업에 자금을 집중 지원한 뒤 대출이자와 투자 회수를 통해 얻은 수익을 투자자들과 공유하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