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PE들의 '큰손' 캐피탈사, RWA 부담에 출자 '셧다운'
펀드레이징 창구는 국책은행으로…출자사업 몰리는 운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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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위험가중자산(RWA) 규제 완화를 통해 '생산적 금융' 유도에 나서고 있지만, 사모펀드(PEF) 출자 분야에선 여전히 자금 흐름이 멈춘 상태다.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들이 RWA 부담을 이유로 블라인드 펀드 출자를 사실상 중단하면서, 중소형 PEF 운용사들은 출자처 다변화에 비상이 걸렸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RWA 산정 방식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업 대출, 정책형 펀드, 인프라 투자 등 '생산적'으로 분류되는 영역에 대해 위험가중치를 현실화하고, 자본비율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유관부처들과 함께 TFT 형태의 협의체를 구성해 RWA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이며, 하반기 중 제도 개선 방향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정책형 펀드와 같이 정부 주도 성격이 강한 영역은 RWA 경감이 유력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가 자금을 일부 출자하거나, 정책금융기관이 보증·후순위 출자 등을 통해 손실을 흡수하는 구조인 까닭이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정책 목적성 자산에 대한 과도한 자본 적립이 금융회사의 위험회피를 유도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제 완화 흐름이 사모펀드 출자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PE 출자는 여전히 고위험 자산으로 분류돼 RWA를 직접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며 "현재 논의되는 제도 개선은 정책펀드에 한정된 것이지, 민간 운용사 대상 출자까지 포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중소형 PEF 운용사 입장에선 이 같은 상황이 더욱 뼈아프다는 평가다. 대형 하우스들이 연기금, 공제회 기관투자자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중소형 하우스들은 캐피탈사를 핵심 출자자로 삼아왔다.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는 최근 몇 년간 PE 블라인드 펀드 시장에서 앵커 LP로 활약하며 신생 운용사의 시장 안착을 지원해온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런 흐름도 급격히 위축됐다. 금융지주 차원에서 RWA 총량을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지면서, 자산 확대가 수반되는 출자 활동이 위축되는 분위기다.
한 중형 PEF 운용사 관계자는 "지주에서 '자산 늘리는 영업은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오면서, 캐피탈사들이 PE 블라인드펀드 출자는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며 "결국 국책은행 중심의 정책형 펀드로만 펀드레이징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 관계자들은 올해 상반기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들의 신규 PE 블라인드펀드 출자가 사실상 전무했다고 입을 모은다. 하반기에도 비슷한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자산을 늘리면 곧바로 자본비율(CET1) 하락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수익률이 높더라도 유동성과 회계처리가 불투명한 PE 출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최근 중소형 PEF 운용사들의 출자 수요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주관하는 정책펀드에 집중되고 있다. 운용사 입장에선 캐피탈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출자처가 정책금융기관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연기금·공제회 등은 출자 사이즈가 크고 평가 기준이 까다로워, 중소형 하우스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실제로 대형과 중소형 분야를 합해 총 4곳의 운용사를 뽑았던 수출입은행의 2025년 첨단전략산업펀드 출자사업에서는 19개의 운용사들이 몰렸고, PE와 VC를 합해 5개 운용사를 뽑는 산업은행의 2025 남부권 지역성장지원펀드에는 15개의 운용사들이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PE 출자는 결국 자산을 늘리는 영업인데, 요즘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에서 '수수료 중심 영업'만 하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운용사들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라며 "그나마 지주계열 캐피탈사가 아닌 중소형 캐피탈사들은 RWA 이슈에서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출자 규모 자체가 작아 앵커LP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