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 매각으로 4500억 마련한 현대그룹, 배당 통해 FI 정리 수순?
입력 2025.08.13 07:00
    현대그룹, 연지동 본사 매각으로 재무 개선
    거래 완결성 강조한 현대엘리 속내 관심
    H&Q 고금리 메자닌 상환 압박 해소용 배당
    연내 콜옵션 행사 가능성, 재무안정성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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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그룹이 서울 연지동 본사를 4500억원에 매각한다. 우선협상대상자는 업계의 예상을 깨고 볼트자산운용·하나증권 컨소시엄이 차지했다. 매각 조건은 현대엘리베이터가 마스터리스(전면 임차)를 유지하되, 보통주 약 100억원 재투자를 통해 해당 자산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번 연지동 사옥 인수전에 참여한 후보군은 호반건설, 코람코자산운용, 케펠자산운용, 스틱얼터너티브자산운용 등 20여곳에 달한다. 이들 모두 비슷한 인수 가격을 제시했는데 최종 우협 선정에는 현정은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펀딩 리스크가 높은 후보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리고 마스터리스 계약은 유지하되 현대엘리베이터의 재투자 규모는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후보들은 300억원 안팎의 보통주 재투자를 요구한 반면, 볼트운용·하나증권 컨소시엄은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보통주 투자에 그치면서도 투자확약서(LOC)를 전액 확보했다. 이후 셀다운(재매각) 계획까지 명확히 제시해 거래 안정성과 완결성에서 우위를 점한 것으로 평가된다.

      신협중앙회, 건설근로자공제회 등 10여곳 이상의 국내 기관투자자(LP)가 이번 거래에 참여할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이달 내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후, 실사를 거쳐 다음달 거래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이번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확보한 매각대금을 재원으로 활용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조달된 자금 대부분이 배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최대주주 현대홀딩스(19.26%)를 비롯, 국민연금공단(9.27%), 현대네트워크(5.74%), 그리고 스위스 엘리베이터 회사 쉰들러(5.2%) 등이 주요 주주로 자리잡고 있다. 중간배당을 하게 되면, 과거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쉰들러 역시 보유 지분율에 따라 배당금을 받게 된다. 매각으로 약 4400억원이 마련될 경우, 단순 계산으로 현대홀딩스 몫은 850억원, 쉰들러 몫은 23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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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번 매각의 실질적 의미는 국내 사모펀드인 H&Q코리아와의 재무구조 조정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현대홀딩스컴퍼니는 H&Q가 보유한 메자닌의 상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H&Q는 현대홀딩스컴퍼니가 쉰들러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23년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3100억원을 인수한 주요 투자자다. 이 가운데 RCPS와 CB에는 일정 시점 이후 현대홀딩스컴퍼니가 콜옵션(매도청구권)을 행사해 되사야하는 권리가 부여돼 있다.

      1차 RCPS 콜옵션 행사는 올해 11월부터 가능하다. 이 구간에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약 1000억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후 2차 콜옵션 기간에는 연 11% 수준의 더 높은 금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조기에 상환하는 것이 재무 부담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만약 현대홀딩스컴퍼니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H&Q는 보통주 전환권을 통해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49.9%를 확보할 수 있어 경영권에 위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현대홀딩스는 FI 상환 자금을 대부분 현대엘리베이터의 배당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22년 200억원에서 2024년 2000억원 수준으로 배당금을 대폭 확대했으며, 올해 1분기에도 1400억원 이상을 지급하는 등 고배당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옥 매각대금이 전액 특별배당으로 나간다면 현대홀딩스는 상환 자금을 절반 이상 충당할 수 있게 된다. 시장에선 현대엘리베이터가 하반기 내 중간배당 또는 결산배당을 실시하거나, 현대홀딩스가 별도로 차입을 일으킬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그룹 내부적으로는 H&Q 이슈 해결을 위한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콜옵션 행사와 관련해 구체적인 타이밍이나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재원 확보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양측에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측은 재무상황을 고려해 1차 콜옵션 행사 기간인 내년 3월까지 시간을 두고 상환에 대응할 예정이다. H&Q도 장기 투자자로서 상환 협상에 유연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현대그룹 측은 "사옥 매각 대금이나 매각 일정, 재원 활용 방안 등과 관련해선 확인이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