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돈' 흘러야 하는데...물꼬 트다 만 '세제 개편안'
입력 2025.08.14 07:00
    주주 충실 의무ㆍ상속증여세 인하ㆍ배당 분리과세는 '패키지'
    상속세 개편은 뒤로 미루고 배당 분리과세는 원안서 후퇴
    대주주가 배당할 유인 없어...'부동산' 투자가 여전히 유리
    '공시지가 현실화' 가능성...돈 묶인 자산가 증시 외면할수도
    • "국내 증시가 성장하려면 부동산에 묶인 돈이 증시로 흘러야 하고, 이를 위해선 주가가 오르고 배당을 더 해도 대주주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소액주주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관점에서 주주 충실 의무, 상속증여세 인하,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따로 떼놓을 수 없는 '패키지'와 같은데, '부자감세' 논란 속에 흐지부지 돼 버려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대표)

      8월 들어 코스피지수는 3200선에 머물고 있다. 지난 1일 코스피가 하루에만 3.88% 폭락하는 '증세 쇼크'를 겪은 뒤, 이어지는 실적 시즌을 소화하며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지난 4~5월의 상승세를 견인했던 기관 수급과 6~7월 증시를 밀어올린 외국인 수급이 모두 주춤한 가운데, 코스피 5000으로 대표되던 낙관론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증시 낙관론이 힘을 잃은 배경엔 세제 개편안이 자리하고 있다. 새 정부가 '증세'에 초점을 맞춘데다 세수 기반으로 기업과 증시를 점찍으며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상법 개정안이 '모멘텀'이 되어 증시를 밀어올렸다면 세제 개편안이 그 실체가 되어 '펀더멘털'을 채워줘야 하는데, 앞뒤 관계가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초의 실망감은 이미 7월 중순 불거져 나왔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이 빠졌다는 내용이 시장에 알려지면서다.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은 승계를 앞둔 기업들이 주가를 실질가치보다 낮게 유지하려는 원인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 중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기업 비중은 70%에 육박한다. 일본은 38%, 미국은 4%에 불과하다. 

      금융권에선 그간 유산세(전체 상속 재산 기준 과세)를 유산취득세(상속자 취득 재산 기준 과세)로 바꿔 중과세 비중을 낮추고, 세율을 낮추거나 공제 기준을 높여 경영의 연속성을 보장해준다면 대주주가 억지로 주가를 누르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제안해왔다. 현 정부가 상속증여세 개편을 '중장기 과제'로 미루며, 실제 개편 가능성은 미궁에 빠져버린 상황이다.

      법인세율 상승 역시 기업 수익성 악화 재료로 평가된다. 기획재정부는 2026년부터 5년간 법인세가 18조5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이 중 대기업이 16조8000억원을 부담할 전망이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전체 순이익이 180조원이었음을 감안하면, 5년간 16조원의 세 부담 증가는 대략 대기업의 마진율을 2%포인트 가량 떨어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정타'는 이번에 발표된 배당소득 분리과세였다는 지적이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포함되긴 했지만, 증시에서 원하는 수준은커녕 의원 발의안(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보다도 크게 후퇴한 내용이 담겼다.

      원안에서는 최고세율이 27.5%(지방세 포함)로 양도소득세 최고세율과 동일했지만, 정부안은 최고 38.5%로 상향조정됐다. 현행 종합소득세 최고세율 49.5% 보다는 낮은 수치지만, 종합소득세의 공제를 감안하면 격차는 7~8%포인트에 그치게 된다. 

      이 경우 대주주 입장에서는 배당을 늘리고 38.5%의 세금을 내는 것보다, 현금을 내부에 쌓아놨다가 지분 매각 시 현금가치를 프리미엄에 반영하고 양도소득세로 27.5%를 내는 게 세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배당을 늘릴 유인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질적으로 자본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배당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주주들의 혜택이 크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며 "현실적으로 소액주주에 대한 주주환원은 대주주의 결정에 달려 있고, 이번 개편이 대주주들에게 배당을 더 배분할 인센티브를 주지 못하면 실효성은 반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부동산'과 '주식' 사이의 수익성 대결에서 주식이 처음으로 앞서갈 수 있을 회심의 카드로 꼽혀왔다. 배당소득은 공제 없이 최저 15.4%의 세율이 적용되는데, 임대소득은 사업소득으로 간주돼 이자 및 재산세 등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고 기본공제 등이 적용되는 까닭이다.

      분리과세 세율 상향 조정으로 인해 이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 유리해야 하는데, 최고 38.5%의 배당소득세율은 부동산에 묶인 돈을 주식으로 돌리는 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배당성향 40% 이상' 등 분리과세 대상 기업 요건이 높아지며, 국민주로 꼽히는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는 물론 KB금융지주ㆍ신한금융지주 등 주요 배당주조차 현 시점에선 분리과세 대상 기업이 아닌 상황이다.

      그렇다고 부동산이 답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증세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 역시 자산가들의 자금이 증시로 흐르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인 '공시지가 현실화 방안'을 다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부과되는데, 현재 69% 수준(아파트 기준)인 공시지가를 실제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면 주택 재산세 부담이 현행 대비 61%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2021년 공시지가 현실화 당시에도 공시지가가 실거래가를 뛰어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퇴직자가 종부세를 내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며 "세금 부담이 커진다면 현금 흐름 창출력이 부족한 위험 자산인 주식에 대한 선호도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반발이 심해지자 정부는 10억원으로 낮추기로 했던 주식 대주주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을 50억원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는 '연말 주가 변동성'을 낮출 뿐,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와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주주 요건은 증시 부양 정책 후퇴를 알리는 상징적 존재였을 뿐이란 것이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대주주 요건 강화는 연말 코스닥 중소형주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유권자인 개인투자자들이 민감해할 만한 주제"라며 "정부 및 여당이 상속증여세와 배당 분리과세에서 이전의 구호 대비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 코스피의 향후 방향성을 예상하는 데엔 훨씬 중요하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세제 개편안은 의견 수렴 후 14일 입법예고, 21일 차관회의, 26일 국무회의를 거쳐 내달 3일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