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전반전 보낸 삼성전자, 후반전에 전사 역량 총결집
입력 2025.08.14 07:00
    2분기 비용 선반영·자사주 매입…'상저하고' 시나리오 포석
    테슬라, 애플 연이어 잡은 파운드리도 비메모리 회복 신호
    M&A 재개로 내부 활기…바뀐 분위기에 美 관세 반사익까지
    실적·주가 끌어올릴 여건 마련됐지만 결국 성과로 증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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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까지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작년 7월 이후 내리막을 탄 주가는 5만원대 바닥을 기었고, D램 영업이익·수익성·점유율에서 왕좌를 빼앗기더니 메모리 반도체 사업 전체가 2위로 밀려날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새 관세 정책을 무기처럼 휘두르는데 적자 날 게 뻔한 현지 신규 팹(Fab)을 어찌할 것이냐를 두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투자가들이 많았다. 

      지난 2분기 성적표도 크게 실망스러웠다. 삼성전자는 2분기 연결기준 4조68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시장 전망치를 23%가량 밑돌았다. SK하이닉스가 9조원을 벌었는데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4000억원을 버는 데 그쳤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LSI가 매 분기 2조원 이상 손실을 내는 탓에 상반기 전체로도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1년 만에 실적이 반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투자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연말이 아닌 상반기에 일회성 비용을 대거 인식한 데 주목했다. 반도체 재고자산에 대한 평가손실 충당금을 반영하며 DS 부문 실적이 당초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 대폭 떨어졌다. 통상 팔리지 않은 재고자산 가치가 떨어질 것 같으면 연말에 반영하는 편인데, 2분기에 이를 인식하며 어닝쇼크를 냈기 때문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실적 발표 시기가 되면 증권가 컨센서스가 어느 정도 잠정실적에 가깝게 수렴하는데, 갑자기 비용을 반영하면서 실적이 급락했다"라며 "고객사 인증을 받지 못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재고를 감안하면 어차피 털었어야 할 내용이긴 한데, 하반기 실적과 주가가 좀 더 극적으로 올라갈 수 있게끔 준비하는 과정으로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한 달여 사이 행보가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대치 이하의 성적표를 내놓는 동시에 3조9119억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밝혔다. 2조8119억원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소각이 예정됐고, 나머지 1조1000억원은 올해 도입된 임원 대상 성과인센티브(LTI)로 지급됐다. 작년 발표한 전체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완료 시점 역시 10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첫 LTI를 지급하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은 삼성전자 임원의 주식소유상황보고서로 도배가 됐다. 공시된 것만 500건이 넘었다. 작년 10월만 해도 사업지원TF 임원 3분의 2가 삼성전자 주식을 1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저점 부근에서 임원들이 대거 주주로 합류한 셈이다. 

      이후 테슬라 협력을 시작으로 온갖 호재가 쏟아지고 있다. 파운드리는 테슬라로부터 22조원 규모 계약을 체결한 직후 애플과의 신형 이미지센서(CIS) 협력도 공식화했다. 시스템LSI도 모바일(MX) 부문 스마트폰 로직 공급을 재개하는 등 비메모리 반도체 전반에서 연달아 성과를 내놓은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실적이 전방 업황에 묶여 있는 때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성과를 내놓으니 증권가에서도 부담 없이 주가 전망을 올려 잡기 시작했다. 

      5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이던 인수합병(M&A) 담당자들의 행보도 전에 없이 빨라졌다. 올해 들어서만 3건의 M&A를 치렀는데 계속해서 다음 안건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투자은행(IB)들도 M&A 시장에 복귀한 삼성전자를 반기며 열심히 후보군을 추려내는 상황이다. 일단 거래 실적이 쌓이기 시작하니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회의적이던 목소리들도 잦아들고 있다. 

      외국계IB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뇌부가 반려하며 놓친 거래가 적지 않고, 규모에 비해 짠 수수료 등 문제로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긴 했는데 생각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라며 "파운드리의 최근 수주 성과도 내부에서까지 수익성 걱정이 새 나오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하는 시선이 더 많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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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 상저하고를 그려내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데다 마침 새 정부도 '코스피 5000 시대' 목표를 국정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올라주지 못하면 안팎으로 곤란해질 사람이 많은 시기라는 얘기다. 국민주식인 만큼 8만전자 위층에 물려 있는 일반 주주들도 부지기수다. 많게는 성과급 80% 이상을 자사주로 받아 가야만 하는 임원들 역시도 성과를 만들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간의 정중동 태세를 고쳐잡으니 공교롭게도 운이 따른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내걸고 리쇼어링을 협박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북미 파운드리 가치가 재평가되면서다. 당장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기 곤란한 빅테크들은 넘쳐나는 돈을 현지 공장에 투입하는 식으로 관세를 우회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북미 팹이 테슬라나 애플 외 신규 고객을 추가로 모실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늘고 있다. 

      성과로 증명하지 못했을 때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테슬라와의 협력은 파운드리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비메모리 부진을 털어낼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선단공정 파운드리의 실제 수율을 감안하면 테슬라 협력에서 짜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후속 성과를 올려야만 실적을 남길 수 있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최근 엔비디아와의 HBM 공급 협력에서도 유의미한 진전이 전해지지만 메모리 경쟁력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시일이 필요하단 진단이 여전히 나온다. 결국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2분기에 비용을 선반영한 것과, 비메모리로 캡티브(내부 매출)를 늘린 것만으로도 하반기 실적이나 주가가 지금보다 올라갈 수 있게끔 여건은 만들어둔 상태"라며 "그러나 메모리 회복, 비메모리 부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제 실적을 확인할 때까지 조심스러운 시선도 많다. 불과 1년 전에도 주가가 8만8000원까지 올랐다가 떨어진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