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의 태세전환…국내 주택 대신 해외 원전·데이터센터로
입력 2025.08.14 07:00
    취재노트
    재건축 시장서 존재감 되찾은 '래미안'
    주택 사업 안착하자 다시 해외로 눈돌리는 삼성물산
    대형원전·SMR·동남아 데이터센터에 집중 전략
    삼성물산의 재건은 곧 삼성그룹의 재건
    전자·바이오發 낙수효과에 다시금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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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동안 국내 주택 사업에 공을 들여왔던 삼성물산이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재건축 시장에선 이미 보수적인 수주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반면, 원자력·데이터센터 등 비교적 고부가 가치 영역에서의 확장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삼성물산 기관전용 IR에 참석한 다수의 투자자들은 삼성물산의 중장기 전략에서 국내 주택의 비중이 크게 낮아진 반면, 해외 수주를 통한 사업 확대 전략이 가장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는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2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회사는 향후 대형원전, 소형모듈원전(SMR) 등 국내에서 몇 안되는 업체만이 수행할 수 있는 원자력 분야와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해외 데이터센터 건립 등에 집중하겠단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루마니아 원전 3·4호기 수주를 추진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동유럽과 중동 대형 원전시장으로 수주 대상을 확대하겠단 계획이다. 회사는 루마니아에서 대형 원전 외에도 SMR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자금조달을 완료해 곧바로 착공에 돌입하겠단 전략을 세웠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하겠단 계획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시장은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 발(發)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공개된 이후 전세계 빅테크 업체들이 앞다퉈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시장이다. 특히 건설과 운영 비용이 낮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유치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틱톡은 올해 3월 태국에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을 위해 향후 88억달러 투자계획을 공개했고, AWS는 2028년까지 총 90억달러를 싱가포르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미 싱가포르에 4번째 데이터센터를 완공한 구글 역시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각각 20억달러,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대열에 투자자들까지 가세하기 시작했는데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블랙록은 태국 데이터센터 사업에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특히 건설부문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하는 상황이긴 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계열사 공사는 전자의 투자 축소로 지난 수 년간 크게 위축됐었다. 물론 오너의 사법리스크를 벗어낸 삼성전자가 다시금 대규모 투자활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지만 그 낙수효과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진 예단하기 이르다.

      지난 수년 간 삼성그룹이 잔뜩 위축된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꺼낸 생존 전략은 국내 주택 시장 확대였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도시 재정비, 주택 재건축 시장에 다시 등장해 주요 입지 수주전에 참여했고, 자체적으로 개발사업을 일으키려는 움직임도 보여왔다. 다만 주택 사업만으로 건설부문의 재기를 기대하기엔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수익성을 갉아먹는 과도한 수주전은 건설사엔 양날의 검이다. 당장의 수주잔고를 채울 순 있으나 변수가 너무 많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부담은 이제 상수가 됐고, 정권이 교체할 때 마다 부동산 정책 변화에 출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최근엔 주요 건설사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으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는데 이는 삼성물산뿐 아니라 모든 건설사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도시재정비 사업에서 자칫 사고가 발생하거나, 조합과의 분쟁이 격화한다면 다른 건설사들에 비해 업계 1위 삼성물산이 입는 이미지의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래미안'은 삼성물산의 주력은 아니었다. 그룹의 오너리스크가 불거지자 그룹 내에서 가장 먼저 축소한 사업이 바로 주택사업이었다. 외부 잡음을 최소화하고, 그룹에 미칠 혹시 모를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측면이 강했다. 이 때문에 래미안의 철수설이 돌기도 했지만 계열사발 수주가 줄어들고 성장 동력이 점차 떨어질 때, 회사가 다시 꺼내든 카드는 별 수 없이 주택사업이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글로벌 빅테크들을 대상으로 한 삼성물산의 수주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원전 등과 같은 중장기 프로젝트의 실적 반영도 아직 한참 후의 일이다.

      삼성물산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택 사업의 비중을 조정하고,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는 현재의 모습은, 그룹이 점차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과정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삼성전자 및 전자 계열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투자 활동이 재기하면서 삼성물산이 다시금 넉넉한 수주잔고를 채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중장기 사업전략과는 별개로 앞으로 수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간 진행될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과연 삼성물산이 그룹 내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진 지켜봐야 한다. 삼성전자의 대주주이지만 존재감은 흐릿하고, 사업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삼성물산에 붙어있는 만년 저평가란 꼬리표가 언제쯤 떼어질지 주목하는 투자자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