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 적용·해외 사례 비교 필요성도 제기
정치권 가세하면서 지배구조 문제로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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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 회계처리 논란이 결국 금융감독원으로 넘어갔다. 한국회계기준원 등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이 기존 '금융자산' 분류를 유지하면서다. 정치권까지 공개 압박에 나서며, 신임 금감원장 후보로 제청된 이찬진 변호사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13일 삼성생명이 공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화재 보유 지분은 기존과 동일하게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FVOCI) 으로 분류됐다. 지분법 적용 여부를 놓고 회계기준원과 논의가 있었지만, 삼성생명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금감원과의 공식 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복현 전 원장 퇴임 이후 원장 공석이 이어지면서 판단을 내릴 리더십 부재가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분법 적용 대상인지 여부는 금감원이 결론 내릴 사안"이라며 "정치권의 입김과 회계기준 해석 논란이 얽혀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은 20% 미만이다. IFRS(국제회계기준)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모두 20% 미만이면 일반적으로 지분법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유의적인 영향력(significant influence)이 입증되면 예외가 인정된다. 문제는 영향력 판단이 정량·정성 요소를 모두 포함해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을 향한 정치권의 압박은 거세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생명 반기보고서 발표 직후 "사실상 삼성생명에 유리한 주식평가 방식을 허용해 개정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관행을 답습해선 안 된다"며, 회계기준원·금감원이 공동으로 명확한 해석 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 김남근·이강일·이정문 의원은 오는 18일 긴급토론회를 열고 회계처리 쟁점과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김남근 의원은 '삼성생명법' 공동 발의자로, 해당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온 인물이다.
회계처리 논란은 회계 정합성 문제를 넘어 삼성그룹 지배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대규모로 보유한 금융계열사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핵심 축이다. 정치권은 이 구조가 보험계약자 권익과 이해상충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임 금감원장 후보 이찬진 변호사는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노동법학회 활동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재판에서도 변호를 맡는 등 대통령과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결국 정치적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회계처리 방식은 기술적 판단이지만, 정치·지배구조 문제와 맞물린 만큼 금감원장이 민주당과 대통령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회계기준 해석의 일관성·투명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회계기준원-금감원 공동 회의, 공개 질의회신, 해외 사례 비교를 통해 '유의적인 영향력' 판단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반기보고서에 "의결권 20% 미만은 원칙적으로 유의적인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보지만, 명백하게 입증되는 경우 예외로 한다"는 원론적 기준만을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