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신임 공정위원장 후보에 공 넘어가
노준형 롯데지주 사장 역량도 시험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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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첫 대형 시험대에 올랐다. 롯데렌탈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둘러싸고 소액주주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공포·즉시 시행된 개정 상법은 이사에게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충실히 의무를 다할 의무’를 부여했다. 그간 관행처럼 대주주 지분만 고가에 사주는 M&A 구조가 법적 제약을 받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거래가 진행되면 롯데렌탈이 개정 상법상 주주 충실의무 위반 1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의 롯데렌탈 기업결합 심사가 장기화되면서 결론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법상 공정위는 신청일 기준 30일 내 결론을 통보해야 하지만, 심층 심사가 필요할 경우 최대 90일을 더해 총 120일 이내에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피니티와 롯데그룹은 지난 3월 11일 롯데렌탈 매각 본계약(SPA)을 체결했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보유 지분 56.17%를 어피니티에 주당 7만7115원, 총 약 1조5729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이 사안은 새 위원장의 정책 기조를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정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주병기 신임 공정위원장 후보가 지명되면서 정상화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위원장 인선이 그간 지연됐다. 어피니티 산하에 업계 1·2위인 롯데렌탈과 SK렌터카가 편입되는 만큼, 이번 건은 공정위에 접수된 사안 중 경쟁제한성 판단이 가장 무거운 사례로 꼽힌다.
이번 거래의 핵심 쟁점은 유상증자다. 롯데렌탈은 어피니티를 대상으로 총 2119억 원 규모(주당 2만9180원)의 제3자배정 유증을 결의했다. 이는 공정위 승인 등 거래종결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집행된다.
문제는 가격 차이다. 대주주 구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7만7115원에 매각된 반면, 유증 신주는 시가 수준인 2만9180원에 발행돼 어피니티의 평균 인수 단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에 소액주주와 VIP자산운용 등 일부 기관은 “주주 충실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개정 상법 시행 이후 주주 이익 침해가 명확한 거래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나 주주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VIP운용 등은 일단 공정위 판단을 지켜본 뒤, 승인 시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회사 재무구조 개선 등으로 유증 필요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유증 자체가 자진 철회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정위가 심사에서 경쟁제한성뿐 아니라 소액주주 반발 움직임도 고려할지가 관건”이라며 “경제 검찰인 공정위의 판단이 앞으로 있을 M&A 거래에 판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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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은 지난 2월 유동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비핵심 자산 매각 계획을 발표했으며, 롯데렌탈 매각은 그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공정위가 승인에 제동을 걸 경우 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미 롯데글로벌로지스 IPO가 무산되며 약 4000억 원 규모의 FI 지분을 되사준 전례가 있어, 롯데렌탈 매각 무산 시 부담은 그룹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번 거래 종결은 노준형 롯데지주 사장 체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다. 그룹 사업전환을 총괄하는 노 사장은 작년 정기인사에서 경영혁신실과 사업지원실을 통합하며 권한이 강화됐다. 롯데렌탈 매각이 알려질 당시만 해도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각하며 노 사장에게 힘이 실렸다. 그러나 유증 논란이 커지면서 해당 거래 구조로 인해 매각 성사는 물론 그룹 평판 리스크까지 커졌다.
여기에 롯데글로벌로지스 IPO 무산에 이어 롯데렌탈 매각마저 불투명해져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안이 소액주주 소송으로 번질 경우 신동빈 회장에게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롯데웰푸드 소액주주들이 담합 과징금 손해 및 위법한 보수 지급을 이유로 신 회장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롯데렌탈도 주주대표소송에 휘말릴 경우 현 정부의 밸류업에 역행하는 그룹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이번 건은 단순히 매각 여부를 넘어 대기업 지배구조와 소액주주 보호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사건”이라며 “공정위 판단에 따라 재무·법률·평판 리스크가 동시에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