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블록딜 문의 급증...EB 유행 속 투자자 찾기는 '난망'
입력 2025.08.19 07:00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 속 현금 확보 노린 매각 문의 급증
    EB 대비 할인율 낮고 주가 하락 우려에 투자자 '관망'
    단기 차익 어려워 구조적 매력도 떨어진다는 평가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주요 증권사 기업금융(IB) 부서에 보유한 자사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으로 매각하고 싶다는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다만 매각 수요에 비해 기관 매수 수요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가 유행 중인 상황에서 주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큰 블록딜 물량을 선호하지 않는 현상이 뚜렷한 까닭이다. 자사주 물량을 받아줄 국내 기관 수요층은 뻔한데, 대기업 중심 EB 시장이 이미 선점해버린 것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지주사 등 자사주 보유 비율이 높은 회사들을 위주로 자사주 매각 문의가 크게 늘었다는 평가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발의되기 전에, 자사주를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이유에서다.

      한 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자사주를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거의 대부분 현금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강제 소각 법안이 도입되기 전에 일정부분이라도 현금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는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역시 "하루에 자사주 블록딜 문의가 세 건씩 들어온 날도 있다"며 "최근 급격히 자사주 블록딜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현재 국회에서 속도감 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사주 보유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라며 원칙적 소각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지난달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는 관련 내용이 빠졌지만, 하반기 중 보완 입법이 검토될 예정이다. 기업들로서는 규제가 시행되기 전 현금화 기회를 잡으려는 분위기다.

      다만 재무건전성과 실적 모멘텀을 갖춘 일부 우량기업과 대기업 계열사 수준이 아닌 이상,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자사주 블록딜을 두고 '구조적으로 단기 차익을 내기 어려운 거래'라는 말이 나온다. 할인 폭이 제한적이고, 매수 직후 주가 조정 가능성이 높아 단기 트레이딩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블록딜이 교환사채나 PRS(주가수익스와프)보다 거래 구조가 단순하고, 계약 이후 주가 변동에 따른 추가 의무가 없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매수자 입장에서는 단기 수익 실현이 쉽지 않고, 매각 발표 직후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자사주 기반 블록딜의 가격 메리트가 낮다는 점이 매수세를 위축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평가다. 

      최근 자사주 기반 EB 발행 시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할증률이 10%대 중후반에서 20%까지 오른 반면, 자사주 블록딜의 할인율은 종가 대비 5% 수준이라서다. 직접 취득하거나 신탁을 통해 보유한 자사주는 거래소 규정상 가격 협상 폭이 종가 대비 ±5%로 제한된다.

      게다가 EB는 채권 성격을 띠기 때문에 만기 시 원금이 보장되고, 교환권 행사로 자사주를 받을 수 있다.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일정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여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블록딜보다 EB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EB나 블록딜이나 수요층은 비슷한데, 투자자에게 더 유리한 EB의 발행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보니 블록딜에 시선이 가지 않는 것이다.

      자사주 매각 발표가 주가에 미치는 단기 충격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최근 몇 달간 자사주 소각 발표를 계기로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해당 종목에서 블록딜 매물이 나오면 주가 하락 가능성이 일반적인 기업보다 매우 높다는 설명이다. 블록딜 후 주가 급락 리스크가 몇 배로 커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소각 기대감으로 주가가 단기간 오른 상황에서 매각이 나오면 주가가 급격히 떨어지니, 시장 환경이 좋더라도 블록딜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