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협의로 NCC 25% 감축하라는 정부…3대 산단 N분의 1씩 줄일 수 있을까
입력 2025.08.20 15:44
    10개社 고통분담 3대산단 동시 조정…무임승차 배제
    정부 목표치 맞춰서 기업 자율적으로 재편안 짜가야
    NCC 나눠 끌 수 없는 덩어리 공장인데 조율 가능할까
    화학사 우선 감축 나서도…정유사 수직통합 실익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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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 개편을 위해 납사분해설비(NCC) 생산능력을 25% 이상 줄이는 목표를 제시했다. 최대 370만톤 규모 설비를 감축할 수 있게 NCC를 보유한 10개 기업이 연말까지 재편 계획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고통분담을 대전제로 무임승차 기업에는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방침도 세워졌다. 그러나 각사 설비운용 구조가 상이한 점을 감안하면 민간이 자율적으로 감축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반응이 나온다. 

      20일 정부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민관 협력으로 NCC 생산능력을 최대 25%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구조 개편 3대 목표도 제시됐다. 

      정부는 울산과 여수, 대산 3개 석유화학단지 구조를 동시에 개편하되 충분한 자구 노력을 보이는 경우에만 종합 패키지 지원에 나서기로 원칙을 세웠다. 특히 각사가 타당한 사업 재편안을 마련한 경우 금융 보조, 규제 완화 등 맞춤 지원책을 제공하는 '선(先)자구노력, 후(後)정부지원' 방침을 강조했다. 

      NCC를 보유한 10개 석유화학 기업도 이날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자율 협약식을 열고 총 270만~370만톤 규모 NCC 감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화학산업협회 추산에 따르면 현재 국내 NCC 생산능력은 에틸렌 기준 약 1280만톤에 달한다. 이번에 민관이 합의한 최대 370만톤 감축 목표는 전체 생산능력의 4분의 1 수준이다. 정부 의뢰로 자문을 맡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과잉생산으로 인한 공멸을 막으려면 25% 수준 설비 감축이 필요하다는 보고서에 근접하게 목표치가 잡힌 것으로 보인다. 

      민관이 감축 목표치를 확정한 것은 다행이나, 개별 기업이 자율적으로 재편안을 짜기는 것이 쉽지 않을 거란 관측이 많다. 

      단순 계산으로는 각사 생산능력에 비례해서 설비를 줄이면 370만톤 감축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NCC를 비롯한 석유화학 플랜트는 라인 단위로 돌아가는 일체형 설비다. 가동률을 조정해 생산량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설비 단위로 보면 생산능력의 일부만 줄이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라인 단위로 특정 설비를 폐쇄(스크랩)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회사마다, 지역마다, 공장마다 설비 운용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산단 내 인접 다운스트림까지 연계된 공정에선 단순히 NCC 설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수정하는 연쇄 파급이 불가피하다. 설비 연한에 따라 감가상각 진행도 다르고 각사 재무 완충력에도 차이가 커서 고통을 분담하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기업마다 이해득실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특정 지역 설비를 찍어주기보다는 목표치만 제시하고 방법은 기업이 알아서 짜오게 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정 지역이나 기업에 구조조정 타격이 쏠리지 않게는 할 수 있는데 조율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노후 라인 하나가 90만톤, 감축목표 4분의 1에 달하는 업체가 순순히 스크랩에 나설까"라고 설명했다. 

      무임승차 배제를 원칙으로 내세웠다지만 NCC에 직접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정유사들이 설비 폐쇄에 나서는 것도 현실적 제약이 크다. 국내 정유사들은 대체로 지난 2010년대 이후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납사를 자체 해소하기 위해 설비 고도화에 나섰다. 산업 전체 경쟁력을 고려하더라도 정유사 보유 NCC는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경제적인 셈이다.  

      이 때문에 370만톤이라는 목표치에 어느 정도 타깃 기업이나 설비가 정해져 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증권사 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370만톤이라는 수치가 나온 걸 보면 어느 정도 타깃이 잡혀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라며 "각사 캐파로 보나, 라인별 노후도, 제품별 생산능력 등을 따져보면 결국 기존 화학사들이 감축에 나서야 한다.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여천NCC 보유 라인들이 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사 중심으로 설비 감축이 이뤄질 경우 정유사가 어떤 형태로 구조조정에 동참할 수 있을지 의문도 많다. 올 들어 대산 산단에서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합작법인(JV) 설립을 논의해오고 있으나, 정유사와 화학사가 수직적 통합에 나서는 방식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다. 이미 자체 보유한 NCC 내에서 납사를 소화하고 있는 터라 대부분 정유사가 화학사와 수직계열화에 나서는 데 유인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