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낮고 더 짧게 지어라" 물류센터 시장 격변 예고…'메자닌층' 논란도 재부상
입력 2025.08.21 07:00
    it의 경제학 [수도권 물류센터 수익률의 경제학]
    경기도, 물류센터 인·허가 강화 가이드라인 마련
    건축물 높이·길이 제한, 지하층도 높이제한에 해당
    사실상 신규 진입 어려워지고…기존 물류센터 몸값 높아질 듯
    한 층을 분리해 사용하는 메자닌(Mezzanine)층
    인허가 규제 강화 움직임에 인정 논란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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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웬만한 수도권 지역이라면 당일 배송은 이제 일상이 됐다. 물류센터 산업은 각 거점에 상품을 보관하고 주문 즉시 빠르게 배송하기 위한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에 힘입어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커머스의 성장과 함께 수도권 주요 지역의 물류센터들은 한동안 천정부지로 몸값이 치솟았지만 공급이 지나치게 늘어나며 지난 수 년간은 침체기를 겪었다.

      다시금 물류센터 시장에 격변이 예고되고 있다.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에 상품 공급을 목적으로 한 물류센터들은 경기도에 집중돼 있다. 물류센터 신규 건립을 목표로 하는 사업자들 역시 제 1타깃으로 경기도 권역을 꼽는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청이 물류센터 건립과 관련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류센터의 난립을 막겠단 취지인데, 사실상 신규 진입은 점차 어려워지고 이미 지어진 물류센터들의 가치가 높아지는 상황이 조성될 조짐이 보인다.

      경기도청은 지난 4월, 31개 시군 개발·건축·물류창고업 등록부서를 대상으로 '물류창고 건축관련 표준허가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신규 물류센터는 ▲정온시설(주택지·학교·노유자시설 등)과 500m 이상 떨어뜨려 건립해야 하고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공업지역 40m, 그 밖의 지역 30m 이하)하고 ▲건축물의 길이 역시 제한(공업지역 150m, 그 밖의 지역은 100m 이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건축물의 높이를 산정할 때 지하층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존에 물류센터를 건립할 땐 건축물의 높이와 길이의 제한이 없었다. 대지면적을 기준으로 한 용적률 제한을 뒀기 때문에, 용적률 기준만 맞춘다면 건축주의 재량에 따라 건립이 가능했다.

      경기도의 이번 조치는 '경기도 물류창고 난립으로부터 안정한 정주환경 조성에 관한 조례'에 따른 것으로 지역민들의 생활권을 보장하고, 소방설비를 비롯한 물류센터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관련업계에선 사실상 인·허가를 강하게 제한하겠단 취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도 신규 물류센터의 인·허가를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개별 자치단체에선 물류센터 건립이 늘어나며 실무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마땅히 제한할 규정이 없다. 수년 넘게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사업자와의 소송으로 이어지고, 사업자가 승소하면 그제서야 인·허가를 내주는 사례도 발생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물류센터와 관련한 현행법을 모두 지키고 인허가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지자체에서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결국 소송을 통해 인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소송이 수년간 이어지면 이자비용 등이 급격히 늘어나 결국 사업성이 떨어지는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지금도 물류센터 건립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앞으론 각 자치단체의 허가 기준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신규 진입은 점차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류센터에 용적률 및 연면적 기준만 적용됐을 땐 건축주는 연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지하층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제부턴 지하층을 포함한 높이 제한을 받기 때문에 기존 물류센터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평가다.

      건물의 길이를 제한하면 물류센터의 운용 효율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효율이 떨어지는만큼 임차인이 건축주와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는 결국 건축주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효과로 이어진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물류센터 건축 규제가 강화할수록 임차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임대수익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기 때문에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점차 힘들어 지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반대로 신규 건축 규제가 강화할수록 기존 물류센터에 대한 주목도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배포된 가이드라인이 기존 사업장에 소급 적용되는 건 한계가 있다. 따라서 높이·길이 등의 제한을 받지 않았던 대형 물류센터들에 대한 주목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단 평가다.

      여전히 수도권 A급 물류센터의 공실률은 20%가 넘는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공급과잉 이슈를 겪고 신규 공급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머지않아 공급자 우위시장으로 변모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물류센터 공실률은 올해 들어 완만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외국계 투자자들은 다시 물류센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컬리어스에 따르면 국내 물류센터의 외국계 투자 비중은 2020년 약 23.8%에서 올해 4월 기준 60%를 넘어섰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블랙스톤은 최근 물류센터 투자를 재개했고, 워버그핀커스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투자자들도 실제로 물류센터 투자를 집행하며 한국 물류시장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 적층식랙(multi-tier rack)을 활용한 메자닌층 조성 예시 이미지 크게보기
      적층식랙(multi-tier rack)을 활용한 메자닌층 조성 예시

      물류센터 시장엔 다소 모호한 영역, 즉 그레이존(Gray Zone)이 존재해왔다. 

      바로 물류센터 내 한 개의 층을 '적층식 랙(Multi-tier rack)'을 활용해 임차인이 실질적으로 1.5~2배의 면적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관련 업계에선 '적층식 랙'을 사용해 조성한 공간을 이탈리아어로 1층과 2층의 사이층을 의미하는 메자닌(Mezzanine)층으로 불리고 있다.

      사실 메자닌층에 대한 논란은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메자닌층은 공식적으로 한 개의 층으로 인정받지 않는 공간이다보니 연면적 산정 규제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소방법의 적용은 받아 소방 설비 등을 갖춰야하는 규제가 적용된다.

      과거엔 건축법상 뚜렷한 규제가 없다보니 개별 자치단체에서 '위법 건축물'로 판단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반대로 국토교통부(舊 국토해양부)가 행정처분을 하지 말라는 공문을 지자체에 내려보내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 물류센터에 건립에 관한 규제가 강화하고, 또 수차례 화재 사건을 겪으며 소방법에 따른 기준도 높아진 탓에 메자닌층에 대한 명확한 규제도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사실 물류센터는 더위에 취약한 구조이다. 메자닌층으로 밀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근로자들의 근로 여건이 악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같은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에선 근로환경에 대한 실태 점검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메자닌층은 임시구축물에 해당한다. 이같은 임시구축물에 근로자가 상시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엔 근로자 '상주성'에 관한 민원도 한 지자체에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센터 한 층의 높이는 약 10m이다. 건축주 입장에선 연면적 제한으로 층수를 무제한 늘릴 수 없다. 반대로 물류센터를 임차해 사용하는 기업 입장에선 효율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같은 메자닌층을 조성한다. 

      임대료는 면적에 비례해 책정되는데 메자닌 층을 활용하면 임차인은 실제 사용면적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물류센터를 활용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반면 임대인 입장에선 그만큼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 낮고 더 작게 지어야하는 건립 기준이 강화하고, 메자닌 층에 대한 규제까지 명확해지면 물류센터를 필요로 하는 시장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축 허가가 나지 않아 공급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존 건축물의 활용도 역시 떨어지게 되면, 물류센터 시장에 혼란이 찾아올 것이란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