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아도 기대 못 미친 임상 결과에 주가 주춤
펩트론·지투지바이오 등 국내 비만株는 고공행진
높은 주가에 '거품' 꺼질까…"모멘텀만으론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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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치료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기업들의 주가가 고점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해외 기업과 기술이전을 추진할 것이란 기대에 올해 들어 지속해서 상승 폭을 키웠다. 하지만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 등 비만치료제를 개발하는 해외 기업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장 전반의 기대는 가라앉은 분위기다.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의 주가 사이 괴리가 나타나자 높은 주가를 향한 고점론도 제기된다.
21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비만치료제 마운자로를 개발한 일라이 릴리의 주가는 최근 한 달 새 7%가량 하락했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주가 하락 폭은 19%에 달한다. 비만치료제 위고비로 열풍을 일으킨 노보 노디스크의 주가도 지난 한 달 새 15%, 반년 새 45% 낮아졌다. 두 기업은 투약 시 비만 환자의 체중을 15~20% 줄일 수 있는 약물을 각각 개발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비만치료제 자체도 글로벌 시장의 화두가 되며 주가는 물론 시가총액도 지난해 상승했다.
하지만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의 주가는 그간의 상승 폭을 반납하는 모습이다. 특히 노보 노디스크의 주가는 2022년 초부터 2024년 중순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고꾸라져 2022년으로 돌아갔다. 노보 노디스크는 대사질환에서 오랜 기간 강점을 보인 일라이 릴리와 달리 비만치료제로 주목받았기 때문에 주가 하락 폭이 컸다. 비만치료제의 인기에 불법적인 복제약이 쏟아졌고, 제품 공급도 원활하지 못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해 왔다. 비만치료제와 관련한 기술, 약물을 보유한 기업은 펩트론과 인벤티지랩, 디앤디파마텍, 올릭스, 한미약품, 지투지바이오 등이다. 펩트론의 주가는 올해 초 8만9000원대에서 현재 32만4000원대로 솟았다. 디앤디파마텍의 주가는 같은 기간 4만8000원대에서 13만3000원대로 상승했다. 비만 테마가 부상하며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 가능성이 주가 상승 재료가 됐고,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내 증시가 호황을 맞으며 상승 추세는 더 거세졌다.
투자금융(IB)업계에서는 비만치료제 시장이 옥석 가리기 구간에 들어선 만큼 국내 기업의 주가 향방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비만'이라는 테마에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쳤지만, 약물의 효과와 시장성, 경쟁 구도를 고려해 몇몇 기업만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은 임상시험 경험과 자금 여력을 고려해 글로벌 기업에 기술, 물질을 이전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글로벌 기업의 연구개발(R&D) 방향, 성과에 국내 기업이 영향을 받는 구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비만치료제 시장의 성장이 뚜렷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기업에 투자하는 시기는 지났다"라며 "비만치료제 시장에서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만큼 가능성 있는 기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벤처투자사(VC) 한 관계자도 "비만 테마가 부상하며 일부 기업의 주가가 이유 없이 올랐다"라며 "자체 개발 물질을 가진 기업과 약물전달시스템(DDS)을 보유한 기업을 구분해 업사이드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기업들은 좋은 실적을 내고도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임상시험 결과가 시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주가가 고꾸라지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주사제 형태라 환자가 직접 투여 시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때로 염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먹는 형태(경구제)의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물론이고, 화이자, 로슈 등 글로벌 기업이 새로운 비만치료제 개발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도전 결과는 녹록잖다. 일라이 릴리는 하루 1회 복용하는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체중 감량 효과가 12%에 불과했다. 노보 노디스크도 먹는 비만치료제 임상시험 결과를 내놨으나 체중 감량 효과는 13~15% 정도를 기록했다. 둘 다 체중 감량 효과가 있음에도 기존의 치료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어 시장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다. 바이킹테라퓨틱스는 최근 부작용이 우려되는 비만치료제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며 일주일 새 주가가 36%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