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한가운데 놓인 K-원전…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두산그룹
입력 2025.08.25 07:00
    증권가 숫자는 낙관, 주가는 출렁
    웨스팅-한수원 JV, 기회와 불확실성 공존
    정치 프레임, 두산을 정쟁의 한복판에
    李와의 오래된 인연이 불러낸 묘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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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달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7만2200원으로 치솟았다. 올해 들어 이재명 정부의 친원전 정책 기조가 분명해지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한껏 실린 결과였다.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와의 불평등 협정 논란이 불붙자 주가는 곧장 내리꽂혔고, 다시 미국 합작사(JV)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반등을 거듭했다. 현재는 6만원대에서 오르내리며 하루에도 수차례 기류가 바뀐다.

      국내외 증권가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두산에너빌리티를 '선호 원전 종목'으로 꼽았다. 단순 기자재 납품사가 아니라 장기적 성장 스토리가 살아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권사들 역시 목표 주가를 줄줄이 올리며 매수 의견을 냈다. 

      이에 시장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추진 중인 JV 구상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내 원전 수주를 염두에 둔 JV는 구체적 구조를 두고 논의가 오가는 상황이다. 투자업계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포스코, DL그룹 등 국내 기업들이 초기 지분 참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아직 최종 확정 단계는 아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JV가 설립되면 차세대 원전, 특히 소형모듈원전(SMR) 진출을 위한 전략적 협력이 열릴 수 있다. 여기에 두산이 참여할 경우 기술·공급망·수출의 3박자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높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분위기는 상반된다. 여당은 "굴욕 협상"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국정조사 카드까지 만지작거린다. 야당은 윈윈 협력이라며 반박하지만, 속내는 편치 않다. 지난 정부가 체결한 계약서를 두고 서로 책임을 미루는 형국이다. 같은 계약서를 두고 시장은 기회를 말하고, 정치권은 책임을 묻는다.

      이런 가운데 두산그룹 출신인 김정관 산자부 장관의 역할이 부각된다. 당초 정치권 안팎에서는 새 정부 출범 직후 산자부 장관직을 다소 부담스럽게 보는 기류가 있었다. 기후에너지부 신설 공약으로 산자부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조정된 데다, 기후에너지 정책을 챙기던 김성환 의원이 환경부 장관직을 맡으면서 장관직의 권한과 책임이 예전보다 미묘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던 터다. 

      그런 가운데 김 장관이 원전 현안과 관련해 정치적 화살이 집중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떠안게 된 셈이다. 이번 방미 일정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계약의 실무적 진위 여부를 따지기 전에,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장관의 역할이 먼저 부각되는 모습이다.

      두산그룹은 이번 논란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 체코 원전 프로젝트는 한수원이 턴키로 수주한 사업이고, 두산은 원자로 주기기를 납품하는 공급자 위치다. 협상 테이블의 중심에 앉아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여의도 공방 속에서 두산은 언제나 핵심 당사자로 불려 나온다. 

      웨스팅하우스 계약서가 공개된 시점 역시 공교롭다. 박지원 두산그룹 회장이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방미길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빈손 외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타이밍이었고, 정치권의 논란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는 계약 조항의 합리성보다 정치적 외풍에 휘둘리는 두산의 구조적 난처함을 보여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산의 운명은 뒤집혔다. 탈원전 시기에는 '사양 산업의 퇴로'라며 생존을 위협받았고, 원전 확대 기조가 돌아오자 '재기의 상징'으로 치켜세워졌다. 이번에는 굴욕 외교 프레임에 갇혀 또 다른 시험대에 서 있다.

      두산그룹과 현 정부의 인연은 오래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있던 시절, 두산건설 부지 개발 문제가 지역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성남 구도심 재개발, 부지 활용 방안, 채무조정 문제를 두고 수년간 갈등과 협의가 이어졌다. 당시에도 "두산이 지역경제와 얽힌 민감 사안"이라는 말이 나왔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 차원의 개발 민간사업 검토 단계에서 두산 계열사 참여 가능성이 언급되며, 지역 정치권과 기업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사례가 반복됐다. 실제 수주나 계약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프로젝트 검토 과정에서 두산 그룹이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구조였다.

      중앙대학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고리다. 두산은 2008년 중앙대 재단을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중앙대 출신 교수들은 정계 곳곳에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이번 정부 들어서도 김영진·문진석 등 중대 인맥이 수시로 거론된다. 물론 이 '중대 라인'이 실제로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순 없다. 다만 두산이 재단을 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산과 정치권을 연결하는 상징적 끈처럼 회자되는 건 사실이다.

      정치권이 두산을 향해 시선을 보낼 때, 이런 겹겹의 연결고리들은 늘 함께 소환된다. 그래서 두산은 민주당을 완전히 버릴 수도, 그렇다고 현 정부와 거리를 둘 수도 없는 묘한 위치에 선다.

      그간의 정권 교체기마다 두산의 위상은 뒤바뀌었다. 원전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축이지만, 동시에 정쟁의 한복판에 서온 산업이다. 탈원전에서 원전 확대, 다시 재검토론까지. 노선이 바뀔 때마다 두산의 몸값과 주가도 출렁였다. 이번 웨스팅하우스 협력 역시 수출 활로가 될지, 굴욕 외교 논란으로 비화될지는 정치의 바람 방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최근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방미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부는 재계와 함께 원전 산업계를 챙기려는 시그널을 보냈고, 두산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방미 직전 불거진 계약서 논란은, 두산이 억울하다고 해도 피하기 어려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번 사태는 두산그룹이 다시금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증권가는 두산의 실적과 성장성을 분석하며 매수를 외친다. 그러나 현실에서 두산의 평가는 숫자가 아니라 정치적 기류에 달려 있다. 결국 두산을 둘러싼 논란은 실적이 아니라 외풍의 문제다. 숫자가 아닌 공기가, 지금의 두산을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