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거래서 대형사 소외 이어질까…회사채 '캡티브' 검사 결과에 촉각
입력 2025.08.26 07:00
    상·하반기 연속 탈락…흔들리는 대형사 위상
    리서치 역량은 엇비슷…당국 제재가 당락 좌우
    금감원 캡티브 검사, 내년 판도 좌우할 변수
    중소형사 반사이익 기대…대형사 복귀는 조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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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의 증권사 거래 지형이 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를 통틀어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등 일부를 제외한 대형사들이 줄줄이 밀려나면서, 중소형 증권사들이 1등급 자리를 차지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그 배경으로는 기금운용본부 내 분위기 변화와 함께 금융당국의 제재가 꼽힌다. 그 중 제재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변수는 금융당국이 진행 중인 '회사채 캡티브(captive) 영업' 검사 결과가 첫 손에 꼽힌다. 제재 시점과 수위에 따라 내년 상반기 대형사들의 재입성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국민연금 거래 증권사 선정에서는 iM증권, DB금융투자 등 중소형사가 1등급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반면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3등급에 머물렀다. 

      하반기에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졌다. DB, LS, 대신, 한화투자증권 등 중소형사들이 1등급 명단을 채웠고, 대형사 중에서는 삼성과 미래에셋증권만이 1등급을 지켜냈다. KB증권은 3등급으로 밀렸고, 신한과 NH투자증권은 아예 일반거래 명단에서 빠졌다. 

      외국계 증권사 역시 1등급에 오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대형사 소외, 중소형사 약진'이라는 구도가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국민연금 평가에서 리서치 역량 평가의 신뢰도가 일부 하락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주식 거래증권사 선정 기준에 따르면 100점 만점의 평가 기준 중 정량평가가 85점을 차지하는데, 이 중 '리서치 정량평가'가 20점, '리서치 정확성 평가'가 15점을 차지한다. 정량평가에는 세미나, 리서치 공식 커버리지 종목 수, 심화주제 보고서 등이, 정확성에는 경제지표와 기업실적 예측데이터 등이 포함된다.

      중소형사들은 리서치센터의 규모가 대형사의 절반 정도 수준에 불과하지만, 애널리스트 당 커버리지 종목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평가 점수를 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확성 평가 역시 컨센서스와 유사한 전망을 뒤늦게 내는 방식으로 '점수 관리'를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대형사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는 리서치 부문에서 대형사와 중소형사 사이의 점수 격차가 1~2점 안팎에 그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기금운용본부 내부의 기류 변화 역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본부 내 운용역들이 증권사 담당 영업인력(브로커)의 소통 능력을 점점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성평가 점수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복수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일례로 신한투자증권은 지난해 하반기 일반거래 증권사에서 제외됐는데, 당시 해당 증권사가 대표주관한 기업공개(IPO) '에이피알' 청약에서 국민연금이 한 주도 배정받지 못한 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대세였다. 물량 배정에서 국민연금과의 사전소통 및 조율이 다소 미흡했던 게 정성평가 점수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이었다.

      최근 수 년 새 사실상 당락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른 건 결국 금융당국의 제재 여부라는 평가다.

      국민연금은 최근 6개월 내 감독당국 조치가 있으면 평가 점수에서 최대 5점을 감점한다. 겉보기에는 미미해 보이지만, 점수대가 촘촘한 만큼 운명을 가르는 요소가 된다는 설명이다.

      올해 2월 금융위원회가 적발한 '랩·신탁 채권 돌려막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나, KB, 한국투자, NH, 미래에셋 등 9개사가 기관주의·경고, 과태료 등 중징계를 받았고, 이는 곧바로 국민연금 평가 점수에 반영됐다. 실제로 상반기와 하반기 모두 대형사들이 밀려난 배경에는 이 같은 제재 이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제 관심은 금융감독원이 올해 상반기부터 진행한 '회사채 캡티브 영업' 검사에 쏠린다. 주관사가 계열사를 동원해 물량을 미리 확보하고 수요예측을 왜곡하는 관행을 점검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3월부터 현장검사에 착수해 미래에셋과 삼성증권에 이어 신한, 한국투자, NH, KB증권 등 대형사를 위주로 들여다봤다.

      업계에선 검사 결과가 내년 상반기 국민연금 거래 증권사 선정에 직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 내년에야 결과가 나올 것이란 관측이 많았으나,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이 취임하면서 발표 속도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만약 기관주의나 과태료 등 제재가 확정되면 해당 증권사들은 내년 상반기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형 증권사들이 내년 상반기 재입성을 노리려면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평가다. 제재 이후 얼마나 빠르게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대외적으로 신뢰 회복에 나서느냐도 국민연금 내부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제재를 받더라도 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후 조치를 취하는지가 연금 거래 재선정 과정에서 중요한 평가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사들은 영업 범위가 넓은 만큼 제재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중소형사들은 이번 검사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가 많아 의외의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하반기 1등급 명단은 LS, 대신, DB, 한화투자증권 등 비(非)대형사들이 주도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캡티브 영업 검사와 관련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는 당국이 기관에 대한 제재보다는 제도 개선을 위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다만 그 이상의 실질적인 제재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시점이 국민연금 거래 증권사 선정과도 맞물려 있어 증권사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